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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k Room _ 창작 작업

[생각] '심리의 디테일'에 필요한 것들 - 내적 갈등, 감정 변화, 동기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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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The Devil is in the details

 


3부작으로 예정했던 '이야기의 디테일' 시리즈 마지막. 꽤 오래 전부터 지금까지,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하고 있는 '심리의 디테일'이다. 한 사람의 이야기꾼으로서 여전히 모르는 것이 많아, 채워나가야 할 것들투성이인 영역이기도 하다.

이야기는 결국 인물이 이끌어간다. 배경과 플롯,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도 물론 중요하다. 다만, 그 어떤 요소라도 결국 인물 자체를 부각시켜주기 위한 장치 역할이라고 보는 입장이다. 핵심 장치인지, 부가적인 장치인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살다보면 또 생각이 바뀔 수도 있지만 지금은 그렇다.)

심리적인 디테일이 잘 전달되는 이야기야말로 진정한 의미로 '작품(masterpiece)'이라는 단어가 잘 어울린다. 심리가 잘 묘사된 캐릭터는 분명 가상의 인물임에도 몰입이 쉽다. 마치 세상 어딘가에 존재할 것처럼 느끼게 해준다고나 할까.

한편, 그만큼 표현하기가 어렵다. 대놓고 풀어내면 '전지적 설명충'이 되기 쉽고, 너무 꽁꽁 감춰놓으면 인물의 매력을 드러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 구체적인 이야기를 풀어놓아볼까 한다.

심리의 디테일 - 내적 갈등

질문을 하나 던져본다.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 아마 쉽게 대답하기 어려울 것이다. 만약 쉽게 답했다면, 세계관과 가치관이 몹시 뚜렷한 사람이거나 이미 비슷한 질문을 접하고 깊게 생각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일 것이다.

인간은 복잡하다. 대개 한 마디 말로 정의하기 어렵다. 이유는 간단하다. 살아온 시간 동안 다양한 경험을 쌓았고, 선택의 순간에 서서 혼란을 겪어봤으며, 지나간 어느 순간을 후회해봤기 때문이다.    혹은 다른 이와 다른 의견으로 대립하고 갈등해봤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게 인간이다. 다양한 상황을 겪으며 복잡한 감정을 느끼는 존재. 어떤 상황에 대해 특정한 경향을 보이는 존재. 그러면서도 때때로 예외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하는 혼돈의 존재. 그렇기 때문에 한 마디로 표현하기 어렵다. 대신, 누군가에 대해 알면 알수록 깊이 이해하게 되고 그만큼 친밀감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이치는 이야기 속 캐릭터에도 똑같이 반영된다. 캐릭터 또한 인간(혹은 인간적 존재)이기에, 한 마디로 표현하기 어려운 다각적 특성을 갖는다.

내적 갈등은 캐릭터를 인간적으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요소다. 실제 상황은 아닐지언정, 누구나 겪을 수 있을법한 상황. 혹은 현실에 존재할 수 없는 상황이더라도, 그 본질은 인간에 닿아있는 상황. 예를 들자면, 사랑하는 사람을 구해야할지,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완수해야할지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 같은 것 말이다.

일반적으로 이런 상황의 앞에는, 여러 사건과 함께 인물의 선택을 그려낸다. 이를 통해 그 인물이 어떤 성향을 갖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나서 독자들에게 묻는다. "내적 갈등을 겪고 있는 이 인물은 어떤 선택을 해야 옳은가?"

누군가는 이전까지 보여주었던 성향대로 가야 일관성이 있다고 말할 것이다. 또 누군가는 지금까지의 모습과 반대되는 선택을 함으로써, 뻔하고 진부하지 않은 반전의 묘미가 있다고 답한다. 어쩌면 인간의 '불확실성'과 '의외성'을 보여줄 수 있는 참신한 선택을 원할지도 모른다.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졌지만 이는 결국 작가 본인이 답해야할 문제다. 인물이 어떻게 행동해야 독자들이 가장 납득할 수 있을 것인가? 중요한 선택일수록 고민의 깊이는 깊어진다. 그와 함께 작품의 깊이도 더해진다.

심리의 디테일 - 감정 변화

감정은 음악과 같다고 생각한다. 잔잔하게 흐르며 서서히 변하기도 하고, 어느 순간 급격한 물살을 타듯 격정적으로 바뀌기도 한다. 자연스러운 음정과 불협화음의 규칙이 있듯, 시작점이 어디인지에 따라 감정의 흐름이 자연스러울 수도, 부자연스러울 수도 있다.

아, 음악과 다른 점이 하나 있다. 음악에서는 가급적 불협화음을 피한다. 글자 그대로 '어울리지 않는 소리'이기에, 특별한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쓰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이야기의 감정 변화에서는 다르다. 부자연스러운 감정 흐름은 복선으로 쓸 수도 있고, 독자의 시선을 돌릴 함정으로 쓸 수도 있다. 생각하기에 따라 쓸 수 있는 부분이 많다. 이야기를 변주하기에 좋은 장치다.

이야기에도 흐름이 있다. 흔히 기-승-전-결이라 부르기도 하고,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로 나누기도 한다. 뭐... 요즘은 곧장 클라이맥스를 갖다 꽂는 트렌드가 주목받는 듯하지만, 원칙은 그렇다.

감정 역시 이러한 흐름을 따라간다. 이야기의 긴장감이 높아지면 감정 또한 고조되기 쉽다. 반대로 사건이 해결돼가는 지점에서는 감정도 갈무리된다. 이야기의 긴장을 따라 변화하는 감정의 흐름은 사실상 이야기의 전개를 이끄는 역할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인물의 감정 변화는 읽는 이로 하여금 그 인물에게 몰입할 수 있도록 만든다. 이야기에서 어떤 상황을 접한 독자는 자연스레 감정을 느낀다. 이때 자신과 같은 감정을 느끼는 인물이 있다면, 그와 동질감을 형성하며 몰입하기 쉬워지는 것이다. 특히 주인공이나 비중이 높은 인물이라면 더욱 그렇다.

어떤 인물은 감정의 변화와 함께 '성장'하기도 한다. 흔히 사용하는 플롯이 바로 질투와 시기의 감정으로부터, 인정과 존중으로 변해가는 플롯이다. 주인공의 비범함에 딴죽을 걸거나 무시하던 인물이,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점차 태도를 바꿔나가는 것, 종국에는 든든한 지지자이자 우방이 되는 것.

이는 뻔해 보이지만 묘사하기에 따라 흥미를 더해주기에 충분한 감초와도 같다. 또, 인물의 입체감을 더해주는 장치이기도 하다.

심리의 디테일 - 동기 설명

어떤 인물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한다. '인간이라면 저런 선택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경우도 허다하다. 보통 이런 경우는 '안타고니스트(antagonist)', 즉 주인공의 대적자 포지션에 있는 인물에게서 나타난다.

과거에는 주로 '악당'들이 대적자 포지션에 있었다. 그들은 하나부터 열까지 심술궂은 행동, 비도덕적인 태도, 얄미운 언행으로 채워져있었다. 지극히 단편적이고 그저 퇴치해야할 존재로 그려진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그런 식의 인물을 그리면 이야기가 단조로워진다. 어쩌다 한 번씩 사이다 같은 전개를 위해 필요할 때도 있지만... 보통은 '나름의 사연'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더 많다. 여기서 말하는 나름의 사연이 바로 '동기 설명'에 해당한다. 악역에게 단순한 악역이 아닌, 어느 정도 공감을 얻을 수도 있는 서사를 부여하는 역할이라 하겠다.

가끔 이야기를 읽다 보면, 악역의 서사에 몹시 공을 들이는 경우를 보기도 한다. 너무 공을 들인 나머지, '비운의 악역'이 탄생하는 일도 봤다. 이런 경우는 오히려 주인공이 지탄을 받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한다.

반대로, 주인공의 동기 설명이 너무 부실하거나, 독특하게 그려지는 경우도 있다. 이야기의 참신함, 또는 독자들의 예상을 빗나가는 전개에 집착한 나머지, 소수의견이 되기 쉬운 동기를 부여해버리는 것이다. 읽는 입장에서는 '읭?'이라고 하게 되는 상황이랄까.

내적 갈등이 비교적 덜 드러나는 심리 묘사라면, 동기 설명은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독자들에게 보여줘야만 하는 심리 묘사라 할 수 있다. 감정 변화는 이 두 요소의 중간쯤?에 있다는 게 내 결론이다.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쓰다보니, 또 미뤄두었던 소설을 이어서 쓰고 싶어진다. 일 마친 뒤의 여가시간을 처놀며 보내는 짓을 그만하고, 엉덩이 붙이고 앉아 집필을 재개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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