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하나씩, "판타지 창작"이라는 큰 주제를 두고 그에 관한 포스팅을 써보기로 마음 먹었다. 2025년 새해를 맞아 올해 무언가 해보자고 다짐한 결과였다. 고민하느라 2주 정도 지난 뒤부터 시작했지만, 그 정도는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하루하루 주제를 짜내듯 써내려갔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잠들기 전 포스팅을 하나씩 쓰는 게 생각만큼 쉽지는 않았다. 누군가는 챗GPT를 써서 편하게 포스팅을 하라고 하고, 실제 그렇게 쓰고 있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내키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생성형 AI를 쓰긴 했다. (내 경우는 주로 '뤼튼(wrtn)'을 쓴다.) 다만, 답해준 내용을 가져다가 한참 고치다 보면 어느새 포스팅 하나에 한 시간씩 걸리곤 했다. 어쩌면 아직 내가 생성형 AI 프롬프트를 제대로 쓸 줄 모르는 걸지도 모른다.
어쨌든, AI가 짜준 초안을 가지고 뜯어고쳐가며 1일 1포스팅을 시작한지 약 일주일. 그러다가, 문득 생각이 들었다.
이 글에 '내 생각'은 과연 어디 있는가?
그것은 정말 '내 생각'인가?
매일 하나씩의 포스팅을 하는 건 분명 의미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 작업에는 뭔가 목적이 있어야 한다. 단순히 일기를 쓰듯 하루에 하나씩의 포스팅을 찍어내는 건 의미가 없을 테니까.
그래서 오늘은 하루쯤 쉬어간다고 생각하며, 이 포스팅을 써본다. 간만에 AI의 힘을 빌리지 않은 순수한 내 글이다.
창작의 의미 - 인간의 창작은 '새로움'이 아니다
창작은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행위다. '만든다'라는 것은 미묘한 의미를 갖는다. 쉽게 생각하면 그냥 '새로운 것을 만든다'라고 할 수 있겠지만... 쉽게 생각하는 글을 쓰려 한 것은 아니다. 그랬다면 애당초 글쓰기의 길을 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란 없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창조'의 능력이 없다. 창조란 무(無, nothing)에서 유(有, something)를 이뤄내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인간에게 주어진 권능이 아니다. 인간은 없는 것을 만들어낼 수 없다.
그렇다면 인간의 창작이란 무엇인가. 나는 '재구성'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있는 것들을 깎고 다듬고 이어붙이고 비틀어서 다른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교수가 주창했던 '편집학(에디톨로지, editology)'과도 어느 정도 통하는 바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자신이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생각하고 깨닫는다. 그 생각과 깨달음도 과거 언젠가 경험했던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조각조각 나눠놓으면 무엇 하나 새로운 것이 없다. 모두가 기존에 있었던 것이다. 자연 상태에 있든, 누군가가 생각하고 깨달아 만들어놓은 것이든.
그렇기에 인간의 창작이란 근본적으로 새로울 수 없다. 다만 '새로워보이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즉, 인간의 창작이 지향해야 하는 것은 새로워보이는 것이다. 과거의 언젠가 존재했을지언정, 지금 시대에 새로워보일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인간의 창작이다.
창작의 의미 - '새로워보이는 것'의 의미
그래, 그렇게 '새로움'에 대한 집착은 깔끔하게 버린다. 어차피 내가 무엇을 생각해내든, 그것이 세상에 없던 새로운 것일 가능성은 한없이 낮을 테니까.
참신함이라는 망령에서 벗어나면, 목표점은 분명해진다. '새로워보이는 것'을 만드는 것이다. 말장난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중요한 문제다. '참신하지 않다'는 이유로 지금껏 쓰레기통에 처박힌 습작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 습작들 입장에서는 퍽 억울할 노릇이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참신함이라는 잣대를 들이댄 탓에, 단 한 번의 빛도 보지 못한 채 사라져버렸으니 말이다.
그 버려진 습작들이 좋은 작품이었는지는 내가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 창작자가 내놓은 결과물은 언제나 두 가지 평가를 받는다. 작가 본인이 내리는 평가, 그리고 타인(독자)이 내리는 평가.
작가 본인의 평가는 단순하다. 스스로 생각했을 때 부끄럽지 않으면 그것으로 족하다. 내 기준에 새로워보인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리고 나서 타인의 평가를 받는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시선으로 '새로워보이는 것'인지를 본다. 그렇게 비로소 '완성'된다. 점수가 높건 낮건, 타인의 평가를 받고서 비로소 '작품'이 된다.
아마... 그 시절의 내가 '새로운 것'과 '새로워보이는 것'의 차이를 깨달았다면, 이미 꽤 많은 작품을 내놨을지도 모를 일이다. 새롭지 않았으나 새로워보이는 이야기들이 꽤 많았으니까.
창작의 의미 - '내 생각'을 쓴다는 것.
그렇다면 '내 생각'이란 무엇이어야 하는가. 이미 나는 이 글에 내 생각을 한껏 담아내고자 했다.
인간의 창작은 '새로움'이 아니라는 믿음.
새로운 것과 새로워보이는 것은 차이가 있다는 관점.
이런 것이 바로 '내 생각'이다. 완전하지 않은, 완전할 수 없는, 완전해서도 안 되는 내 생각. 누군가는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내 주위에서만큼은 '새로워보이는' 생각.
누군가는 이에 대해 비판하고 반론을 펼칠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반론이 더 설득력 있고 사리에 맞을지도 모른다. 사실 그럴 가능성이 더 높다. 그 순간이 오면 그때 나는 내 생각을 다시 '업그레이드'하게 될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새롭지 않았으나, 나에게는 새로운 것이었던 지식과 논리. 그 무언가를 더해, 지금보다 더 '새로워보이는 것'으로 다듬어 나가는 것이다. '창작자'로서 애당초 내가 해야할 일은 그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앞으로의 포스팅에서도 끊임없이 이 과정을 반복할 것이다. 기존에 존재하는 것들은 AI가 잘 찾아준다. 물론 AI가 세상 모든 정보와 지식을 가져다주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나보다는 빠르고 넓게 훑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럼 나는 그것들을 토대로 '내 생각'을 빚어낼 것이다. 그렇게 나온 결과물이 새로운 생각, 참신한 깨달음이라는 말도 안 되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지금은 그저 AI가 물어다 준 것을 그대로 쓰지 않고 '재구성'하려 애써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그렇게 '내 생각'을 묻히고 칠하고 덧입히는 과정을 반복하다보면, 꽤 그럴듯한, '새로워보이는' 나만의 정거장에 도착하게 될 것이다. 다음 '새로워보임'으로의 여정을 떠나기 전까지 머무를 수 있는 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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