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Work Room _ 창작 작업

[생각] '묘사의 디테일'에 필요한 것들 - 인물, 행동, 배경

728x90
반응형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The Devil is in the details

 

 

문제점 또는 불가사의한 요소는 세부적인 곳에 숨어있다는 의미의 속담이라고 한다. 무언가를 할 때는 세부사항까지 철저하게 해야 한다는 의미의 '신은 디테일에 있다(God is in the detail)'라는 표현이 원문이라고 하더라. (둘 다 비슷한데...?)

 

하나의 이야기에는 생각 이상으로 많은 것이 필요하다. 읽는 입장에서는 휙휙 넘어갈 수도 있는 사소한 장면일지라도, 쓰는 사람 입장에서는 결코 허투루 할 수 없는 것들이 상당히 많다.

 

사실, 그런 디테일한 부분들은 여러 모로 유용하다. 가장 대표적으로, 독자들의 허를 찌르는 복선을 숨기기에 가장 적합한 곳이 바로 그런 디테일이다. 아예 드러나지 않은 복선은 개연성을 잃고, 그렇다고 너무 대놓고 보여주는 건 복선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디테일을 신경써야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작품의 퀄리티'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 너무 어려운 영역이다. 일단은 '복선' 하나만으로도 디테일에 대해 '디테일하게' 파고들어야 할 이유는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이야기의 디테일'을 위해 무엇을 알아두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생각한 것들을 정리해두려 한다. 누군가에게 전하는 말투로 쓰긴 하겠지만... 결국은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묘사의 디테일 - 인물 (캐릭터)

이야기의 디테일 중 첫 번째는 묘사의 디테일이다. 이는 다시 세 가지 영역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인물, 즉 캐릭터(Character)다. 인물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체다. 아무리 잘 만들어진 배경이 있다고 해도, 인물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니까.

 

같은 맥락에서, 인물이 부실하게 대충 묘사돼 있으면 문제가 된다. 간단하게 예를 들면, 인물이 '형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거나, '이목구비가 반듯하다'라는 묘사가 있다고 해보자. 구체적으로 무엇이 문제냐? 바로 '독자의 몰입'을 불러올 수 없다는 치명적인 문제가 생긴다.

 

소설은 기본적으로 텍스트로 이루어진 미디어다. 쓰는 사람은 나름대로 그 인물에 대한 어떤 이미지를 상상하고 집필을 시작한다. 쓰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인물이 친숙해지고, 저절로 이미지가 그려진다.

 

하지만 독자는 아니다. 생판 처음 보는 인물이기 때문에, 어떤 모습인지 그려주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되지 않는다. 수십, 수백의 작품을 돌아다니며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본다면, 별다른 인상을 남기지 못하는 인물은 매력이 없다. 매력이 없는 작품은 슥- 보고 넘기면 끝이다. 아니, 슥- 보고 넘기기라도 해주면 그나마 다행이다. 보통은 그냥 중도하차하기 십상이다.

 

물론, 독자마다 나름의 상상력 풀(Pool)이 있어서, '이런 이름이면 이런 이미지'라고 알아서 상상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나라식 이름을 가진 인물이라면 자기 친구나 지인 중에 같은 이름이 있어서 비교적 쉽게 이미지를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작가가 의도한 이미지와 같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렇기 때문에 인물의 생김새, 옷차림, 신체적 특징 등에 대해서는 가급적 세세하게 묘사해줄 필요가 있다. 물론 그렇다고 이야기의 시작부터 전체 생김새를 디테일하게 묘사하라는 의미는 아니지만.

 

묘사의 디테일 - 행동

두 번째는 인물의 행동이다. 간단하게 말해서, 어떤 습관을 가지고 있다거나 성격을 드러내는 행동을 자세하게 묘사해줘야 한다. 습관이나 성격을 드러내는 행동은 특히 '복선'을 슬그머니 드러내기에 좋은 포인트다.

 

쉬운 예로, 어떤 한 인물에게 '거짓말을 할 때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는 습관'이 있다고 해보자. 이건 매우 흔하게 나타날 수 있는 습관이기 때문에, 무언가 감춰야 하거나 일부러 드러내지 않는 상황을 슬쩍 깔아놓고자 할 때 써먹기 좋다. 물론, 이 장치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그 전부터 '해당 인물이 이런 습관을 가지고 있다'라는 걸 수시로 보여줄 필요가 있다.

 

때때로 행동은 성격을 드러내는 장치가 되기도 한다. 최근에 언급한 바 있던 요삼 작가의 작품에서는 '강산'이라는 인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특전사 장교 출신인 그는 호쾌하고 단순한 성격을 가진 인물로 묘사된다. 그리고 그런 성격을 보조하기 위한 장치로 틈틈이 '뒷머리를 벅벅 긁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모습은 작품 전반에 걸쳐 꽤 자주 등장하는 장면이다.

 

마찬가지로, 복선으로 활용할 수 있다.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는 요삼 작가의 다른 작품에서는 '유건'이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 역시 이야기 전반에 걸쳐 '뒷머리를 벅벅 긁는' 행동을 자주 보인다. 요삼 작가의 작품을 처음부터 계속 본 사람들이라면 이 대목에서 뭔가 눈치를 챈다. (자세한 내용은 스포일러이므로 여기까지만 쓰겠다.)

 

이런 식으로 인물의 행동은 성격을 드러내는 장치이자 어떤 설정에 대한 복선을 은근하게 드러내는 장치로 활용할 수 있다. 행동 하나에도 묘사의 디테일이 들어가야 하는 이유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포인트는 하나다. 불필요한 행동까지 자세하게 묘사하면서 지면을 낭비하지 말라는 것이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장면에서는 간단하게 넘어가고, 무언가 스토리 측면에서 의미가 있는 장면일 때, 혹은 작가로서 독자에게 '뭔가 있다'라는 암시를 주고 싶은 장면에서나 디테일을 챙기면 된다. 일종의 '완급조절'이다.

 

묘사의 디테일 - 배경

마지막 세 번째는 배경이다. '아무리 잘 만들어진 배경이 있어도 인물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라고 앞에서 말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배경을 대충 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반대로 말해서, 잘 만들어진 인물이 있어도 허허벌판이나 아무 것도 없는 무(無)의 공간에 있다면 이야기가 될 수 없다. 기껏해야 '공허한 표정으로 쓸쓸하게 고독을 곱씹는다' 정도나 되겠지...

 

배경은 크게 '시간적 배경'과 '공간적 배경'으로 나뉜다. 여기에 좀 더 디테일하게 들어가면 시대적 배경, 사회적 배경 등까지 들어갈 수 있겠지만, 그건 좀 더 깊이 있게 다뤄야 하는 부분이므로 나중에 따로 생각을 정리해서 이야기해볼 예정이다.

 

시간적 배경은 쉽게 말해 하루 중 어떤 시간대인지를 묘사할 때 주로 쓴다. 대표적으로 어떤 인물들 사이에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는 순간을 묘사할 때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의 로맨스를 그릴 때, 과거 어느 순간에 두 사람이 특별하게 기억하는 어떤 시간이나 특정한 상황(저녁 노을이 지는 시간 등)을 묘사할 때 쓸 수 있을 것이다. (구체적인 예는... 알아서 상상하시길...)

 

그런가 하면 어떤 상황의 긴장감을 묘사할 때 쓸 수도 있겠다. 마감시간이 얼마 안 남은 상황에서 어딘가로 급하게 달려가는 인물. 그리고 그 앞에 장애물이 되는 어떤 사람이나 사물, 상황 같은 것들을 그려내며, 초 단위 또는 분 단위로 묘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공간적 배경도 맥락 면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공간적 배경은 상황의 흐름보다는 어떤 장면 전체의 분위기를 묘사하기에 적합하다. 뭔가 은밀한 모략이 오가는 상황, 특정 인물이 위기에 처한 상황, 희망적인 예감이 드는 상황 등 저마다의 상황은 각각의 분위기에 어울리는 배경 묘사가 따른다.

 

이를 테면 은밀한 모략이 오가는 상황이라면 기본적으로는 인적이 없는 숲속의 어딘가를 묘사할 수 있을 것이다. 적막이 흐르고 이따금씩 부엉이 울음소리가 들리는 공간을 묘사하면 적당하다. 물론, 역으로 이용해서 아무도 다른 사람의 대화를 주목하지 않는 파티장이나 번화가에서 모략을 주고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문득 떠오른 건데...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시간과 공간 두 가지 개념을 굳이 따로 써야만 한다는 법칙 같은 건 없지 않나 싶다. '시공간'이라는 개념을 아직 완벽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이를 잘 활용한다면 '시공간 배경'을 유용하게 써먹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지는 오래됐지만, 먹고사니즘에 시달리다보니 넘쳐나는 이야기 속에서 후발주자가 되고 말았다. 뒤늦게 초심으로 돌아가 이런 글을 끄적이고 있어야 하는 입장이 참 씁쓸하긴 하지만... 그래도 한 걸음씩 다시 천천히 나아가보려 한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