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말해두지만, 이 글은 상당한 '뻘소리'가 될 전망이다. 그냥 한 번쯤 이런 이야기를 마음 편히 늘어놓고 싶었다.
전통적인 사회 구조라 하면, 보통 선천적으로 타고난 '계급', 후천적으로 획득한 '지위'를 기준으로 형성된다. 특정 분야에서는 '능력이나 실력'이 지위를 대신하기도 한다.
그것들이 자연스레 여겨지는 세상에 태어나 살아온 덕분에, 그 테두리를 벗어나는 상상을 한다는 게 쉽지 않다. 하지만 꼭 그래야한다는 규칙 같은 건 사실 없다.
나는 타고난 것도 어느 정도 의미가 있지만, 당사자가 원한다면 그것에 구애받지 않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선천적으로 타고난 계급제 사회는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후천적으로 얻을 수 있는 것들을 중심으로 한 사회 구조'를 이야기해보려 한다. 소주제 세 가지로는 '지식 중심', '기술 중심', '가치 중심'을 선정했다. 어떤 면에서는 '독창적 사회'가 될 수도, 또 어떤 면에서는 '현실성 없는 허황된 사회'가 될 수도 있지만, 상상이 닿는 대로 떠들어볼까 한다.
판타지 사회 구조 7. 지식 중심 사회
지금 우리 사회는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다. 그러다보니 정보의 가치가 매우 낮게 여겨지는 경향이 있다. 특히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마구잡이로 유통하는 사례가 많고, 그로 인해 혼란이 가중되기도 한다.
과거에는 분명 달랐다. 판타지 세계에서 흔히 등장하는 요소 중 하나가 '정보 상인'이다. 정보 자체가 상품으로서 가치가 있다는 뜻이다. 물론 여기는 '정확한 정보'라는 단서가 붙는다.
정보와 정보를 교차시키며 만들어지는 결과물 중 하나가 바로 '지식'이다. 정보는 일회성, 한시적 성격을 갖는 경향이 있다면, 지식은 좀 더 오랫동안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차이가 있다.
정보와 지식이 중심이 되는 사회. 현대사회도 어느 정도 그런 경향이 있지만, 이 경우는 조금 더 나아간 형태라고 봐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정보와 지식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사회'라고 하면 가장 적합할 것이다.
즉, 이런 사회는 교육과 학습이 핵심 요소가 되며, 지식을 축적하고 공유하며 활용하는 것이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고 할 수 있겠다. 다만, 이런 사회에서의 경제 구조가 어떻게 돌아갈 것인지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 오픈 소스 커뮤니티 **
정보와 지식이 중심이 되는 사회를 자본주의 대신 '정보주의' 혹은 '지식주의'라고 명명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사회에서 오픈 소스 커뮤니티는 '사회적 기업'과 같은 포지션이 될 것이다. 비슷한 기능으로는 '도서관' 정도가 있겠다.
** 지적재산권 **
이런 사회는 지식이 곧 재산의 역할을 한다. 흔히 '저작권'이라고도 불리는 지식에 대한 권리가 곧 개인의 지위를 결정하는 요소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사회에서는 지식을 어떻게 관리하는가가 핵심 요소가 될 것이다. 은행에서 돈을 관리하듯, 지식을 관리하는 시스템을 어떻게 구축할 수 있을까?
** 전문가 네트워크 **
정보와 지식이 개인의 사회적 위치를 결정한다면, 특정 분야의 전문가는 이 사회의 최고 엘리트 계층일 것이다. 실제 사회에서도 지식인들은 어느 정도 위치를 인정받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면 지식주의 사회에서의 전문가들은 어떻게 달라야 할까? 어떻게 그려져야 그럴듯하면서도 흥미로운 모습으로 비쳐질 수 있을까?
판타지 사회 구조 8. 기술 중심 사회
어떤 의미에서는 지식 중심 사회와 비슷할 수 있다. 지식과 기술, 두 개념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핵심이 되지 않을까 싶다. 나 역시 대략적인 개념은 잡혀 있지만...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 애매하다.
본질적인 차이를 논하는 것은 추상적이 될 것 같다. 그보다는 판타지에서 실제 등장하는 사례를 통해 비교하는 게 적절해 보인다.
예를 들어, 대장장이가 망치질을 하고 담금질을 해 명검을 만들어내는 것은 '기술'의 영역이다. 하지만 금속의 종류와 성분의 비율을 알아내는 방법, 이를 사용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인지를 예측해내는 것은 '지식'의 영역일 것이다.
바꿔 말하면, '이러한 이유로 이렇게 될 것이다'라고 예측하거나, '이렇게 된 이유는 이것이다'라고 설명하는 것은 지식에 해당한다. 그리고 무언가를 이론대로 구현해내는 것은 기술에 해당한다.
물론, 두 가지는 완전히 동떨어져 있을 수는 없다. 기술자도 어느 정도 지식을 갖고 있고, 지식인 역시 어느 정도는 기술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다만 어느 쪽에 더 비중을 두느냐에 따라 기술자냐 지식인이냐가 나뉘지 않나 싶다.
한편, 기술 중심 사회는 예술 중심 사회와도 비슷할 수 있다. 다만, 기술이 보다 이성적 영역이라면, 예술은 감성적 영역이라는 차이가 있겠다.
예술은 엄격한 규칙과 현실성보다는, 창의성과 자유로운 표현을 중시하는 영역이다. 지식보다는 영감에 가깝다고 해야할 것이다. 예술이 한 사회의 중심적 요소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좀 더 깊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다.
** 기술자 집단 **
기술자들은 보통 괴팍하다는 이미지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기술적인 완성도와 우수성을 최우선 가치로 두다 보니, 사회성이 부족해졌다는 설정이 종종 쓰인다.
이런 기술자들의 권익을 대변해주는 집단이 바로 길드나 협회 등이다. 이들은 기술자들의 권리를 지키는 이익집단이자 기술자들의 교류를 지원하는 커뮤니티의 기능을 한다. 기술 중심 사회에서는 이들이 정치적, 경제적으로도 큰 비중을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
** 기술 경제 **
판타지에서 기술자는 경제적으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좋은 무기를 만들 수 있는 명장, 특정한 재료를 다룰 수 있는 고급 기술자 등이다. 이들은 성질이 괴팍하건 말건 충분한 가치를 인정 받는다. 보통은 경제적으로도 풍요롭거나, 최소한 굶어죽을 걱정은 하지 않는다.
한편, 이들이 주축이 돼 하나의 경제 시스템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기술자들이 거주하는 지역에 시장이 형성되기도 하고, 마을이나 도시가 세워지기도 하는 것이다. 기술주의 아래에서 사회 구조는 어떻게 이루어질까? 이 또한 상상력의 영역일 것이다.
판타지 사회 구조 9. 가치 중심 사회
'가치 중심'이라는 말은 뜬구름 잡는 듯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결국 지식, 기술 중심 사회의 연장선이다.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에는 지식과 기술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대사회만 해도 그렇다. 어떤 집단은 환경 문제를 중요하게 보고, 어떤 집단은 노동자의 권리를 강조한다. 그런가 하면 어떤 집단은 종교적 가르침을 우선순위에 둔다. 사람들의 가치관은 저마다 다르다.
가치 중심 사회란, 어느 한 가지 가치에 집중하지 않고 모든 종류의 가치를 의미있다고 보는 사회를 말한다. 가치의 다원주의라고 할까. 다만, 말은 좋지만 현실성이 부족하다는 문제를 가지고 있다.
인간의 생각에는 경계가 없으니, 무수히 다양한 관점의 가치가 등장할 것이다. 그 모든 것을 가볍게 여기지 않고 평등하게 보는 사회라니... 빛만 좋은 개살구 느낌이지 않을까 싶다.
게다가 설령 그런 사회가 가능하다고 한들, 현실적인 실물 경제와 정치적 의사결정은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까? 정리하자면, 가장 이상적이지만 가장 구현 가능성이 떨어지는 형태의 사회 구조라 할 수 있겠다.
다음은 가치 중심 사회에서 존재할 수 있는 몇 가지 가치에 관한 내용이다.
** 환경 친화 단체 **
개인이든 집단이든 결국 자연을 바탕으로 살아간다. 인위적인 환경을 구성한다고 해도, 어떤 지점에서는 자연과 맞닿아 있을 테니까.
그런 점에서 환경 공동체는 강력한 정치 결사체이자 이익 집단이 될 수 있다. 사회 구조를 이루는 모든 개별 요소를 '환경'이라는 잣대로 평가하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테니까. 환경 친화에 관련된 지식과 기술에서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전문가들일 수도 있다.
** 철학 단체 **
어떤 사회든 한 지점에 머물러 있지는 않는다.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변화해간다는 이야기다. 변화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그 이유에는 나름의 목표가 있고 가치관이 있다. 보통은 그것을 가리켜 '철학'이라 한다. '철학이 있는 지도자'라고 표현할 때의 그 철학이다.
철학 중심 주의라는 건 어떤 면에서 플라톤이 주장했다는 '철인정치'라 볼 수도 있다. 뚜렷한 가치관이 있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방향으로 사회를 이끌어가려는 개인과 집단을 중시하는 사회 말이다. 나름의 철학이 있으면 대접 받고, 그 철학이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을수록 더 힘이 있는 구조다.
** 모든 가치는 중요하다 **
가치 중심 사회의 핵심은 평등이다. 무엇이 됐든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있다면, 그 자체로 구성원의 자격은 충분하다. 다만, 좀 더 발언권을 얻으려면, 혹은 잘 살려면 보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가치를 내세워야 한다.
이런 구조는 '사회'로서는 매우 흥미로운 양상을 그릴 수 있을 것 같다. 문제는 앞에서도 반복했던 부분이다. 결국 살아가기 위해서는 실제 재화의 생산과 유통, 소비가 필요한데... 특정한 가치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사회에서 이런 경제 시스템은 누가 어떤 형태로 운영할 수 있을까? 어려운 문제다.
그래서, 결론은?
이번 글은 상당히 뻘소리 성향이 짙게 풍겼던 관계로 나름의 결론을 내려보려고 한다.
'독창적인 사회 구조'는 창작자로서 욕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주제다. 기왕이면 내가 쓰는 작품이 널리 읽히고 오랫동안 기억되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언가 독특한 포인트를 가지는 것이 좋다. 사회 구조의 독창성 역시 그 포인트 중 하나가 된다.
황제나 왕, 귀족 등 지배 계층과 평민, 노예 등 피지배 계층이 등장하는 이야기는 너무 많다. 이야기를 구성하기에 따라 충분히 재미있을 수는 있지만, 독창적으로 보이기는 너무 어렵다.
그래서 오늘의 생각을 해보게 됐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다르게 해보면 어떨까? 구조적으로 달라진다면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까? 그런 세상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그런 세상이 현실적으로 가능한지는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야기로서 그럴 듯하게 표현할 수만 있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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