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에 그리 밝은 편은 아니지만, 한 가지 기억에 오래 남아있는 것 중 하나는 삼국에 저마다의 회의체가 있었다는 것이다. 고구려의 제가 회의, 신라의 화백 회의, 그리고 백제의 정사암 회의다. 각국의 정치적 의사결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의결기구다.
삼국시대의 정치 체제는 모두 왕을 중심으로 한 군주제였다. 하지만 절대적 권력을 누렸다기보다는, 귀족들과의 논의와 타협이 바탕이 됐다. 제가 회의, 화백 회의, 정사암 회의는 모두 귀족 중심의 의결기구로, 중요한 정치적 역할을 맡고 있었다.
이 세 가지 회의의 성격과 기능은 어떤 차이가 있었을까? 이들을 비교해서 정리해두기로 한다. 앞으로 새롭게 만들고자 하는 세계관 구상에서 국가/조직의 의결기구를 어떻게 설정하면 좋을지 단서가 되기를 바란다.
삼국 회의체 - 고구려 제가 회의
고구려의 제가 회의는 왕이 주재하였으며, 귀족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기구였다. 특징이라면 크게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는 왕의 권한이 강했다는 것이다. 왕과 귀족이 모여 협의하는 회의체였지만, 상대적으로 다른 두 나라에 비해 왕의 권한이 강한 편이었다는 설명이 있다.
두 번째는 군사 관련 결정을 내리는 기능이 강했다는 것이다. 물론 군사 외의 이슈도 다루긴 했지만, 보통은 군사 관련 이슈를 많이 다뤘다고 알려진다. 고구려는 영토가 넓었던 만큼 외적 침입에 대응하거나 원정을 나가는 일도 잦았을 것이다. 이에 따라 군사적 의사결정의 필요성과 중요성이 높았을 것으로 풀이된다.
이러한 형태는 '군국주의 국가'를 설정한다면 도움이 될 것 같다. 혹은 제국을 표방하는 강대국, 아니면 규모와 무관하게 많은 타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경우에 어울리는 아이디어를 제공해준다.
다만, 군사적 목적으로만 소집되는 국가 회의는 다소 부자연스럽다. '용병국가'와 같은 독특한 형태라면 모를까, 기본적으로는 정책 등 국가 운영에 관한 논의도 이루어져야 마땅하다. 결국 핵심은, 무엇을 논의하는지보다 '누가 모여서 회의체를 이루는지'에 달려있다고 할 것이다.
삼국 회의체 - 신라 화백 회의
신라의 화백 회의는 제가 회의와 반대 성향을 띤다. 왕이 소집해 이루어지고 왕의 권한이 강했던 제가 회의와 달리, 화백 회의는 왕이 아닌 귀족들이 주도하는 형태였다. 따라서 왕이 어떤 사안에 대해 결정하더라도, 귀족들이 그에 대한 견제를 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의사체가 만들어진 배경 역시 국가적 특성에서 바라봐야 마땅할 것이다. 국경이 넓고 외적 침입이 많았던 고구려와 달리, 신라는 국경을 맞댄 국가가 몇 없었다. 게다가 신라의 영토였던 경상도 지역은 상대적으로 산이 많은 편이다. 강원도만큼은 아닐지라도 꽤나 지형이 험한 축에 속한다.
이런 구조는 고대 그리스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그리스에서 '폴리스'라는 이름의 도시국가가 발달했던 것은 서로 교류가 수월하지 않은 지형 덕분도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신라 역시 각 지역 별로 간섭이 쉽지 않은 지리적 구조로 인해, 각 지역에 자리한 유지(귀족)들이 힘을 가졌을 수 있다.
화백 회의는 국가의 정책뿐만 아니라 전쟁, 외교, 인사 문제 등을 폭넓게 다루는 회의체였다. 귀족들은 각자 자신들의 지역 이익을 반영한 의견을 제시했을 것이고, 어느 한쪽으로 이익이 몰리지 않도록 치열한 협의와 협상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삼국 회의체 - 백제 정사암 회의
백제의 정사암 회의는 앞선 두 나라의 회의체와 딱 중간 정도의 느낌이다. 백제도 물론 왕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 체제를 가지고 있지만, 귀족들의 권력이 강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초창기 건국에 관해 고구려의 왕족과 그를 따르는 귀족들이 관여했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이 부분은 잘 모르는 영역이니 일단 접어둔다.
어쨌든 정사암 회의는 왕도, 귀족도 어느 한쪽에 치우친 권한을 갖고 있지 않았다고 한다. 실제 양상이야 어땠을지 모르지만, 겉으로 봤을 때는 이상적인 형태였던 셈이다. 이를 토대로 국가의 정책과 외교 문제를 다뤘다.
백제는 산이 적고 평야와 강이 많은 지형에 있었다. 영토 자체가 그리 넓은 편도 아니고, 신라와 마찬가지로 국경을 맞댄 국가도 몇 되지 않는다. 게다가 지형적 특성상 교류가 수월한 구조였으니, 신라와는 반대로 서로 활발하게 협력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한편, 백제는 서해로 진출하면 중국의 넓은 해안선에 금방 닿을 수 있는 지리적 위치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 당시의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그것은 미지수지만, 외교와 무역에 적극적인 태도를 갖고 있었다는 근거는 여럿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즉, 정사암 회의는 군사 문제만큼이나 '외교 문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이런 형태의 회의체를 설정에 활용한다면 어떨까? 왕정보다는 공화정 형태나 연방, 연합체 같은 형태의 사회에 더 어울리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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