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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k Room _ 창작 작업

[설정 참고] 한반도 정치 - 고조선, 고구려, 백제, 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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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국사보다는 세계사 쪽을 더 좋아했다. 역사를 전공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교과서 수준의 겉핥기 정도만 알고 넘어간 수준이지만, 그래도 굳이 비교하자면 동양사보다는 서양사 쪽에서 알아듣는 말이 더 많은 편이다.

그렇다고 해서 동양사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특히 지금 구상 중인 작품의 세계관 설정에는 동양신화 요소가 여럿 들어가 있다. 어떤 이유로든 동양쪽 공부를 더 해야하는 이유다. 그 일환으로 한반도 국가들의 정치 구조를 들여다보기로 한다. 신화는 결국 그 시대 실제 사회와 맞닿아 있으니까.

삼국시대부터 시작할까 하다가, 그래도 고조선을 빼놓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따지면 포함해야할 국가가 더 있긴 하지만, 그냥 학창시절 배웠던 내용에 기반하기로 한다. (교육이라는 게 이렇게 중요하다)

고조선은 한민족 최초의 국가로, 후속 국가들에게 여러 모로 영향을 준 국가다. 그리고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시대는 비슷한 듯하면서도 저마다 특색이 있는 정치 체제를 발전시키며 한반도 패권을 두고 경쟁을 벌였다.

그런 고로 이번 글은 부득이(?) 네 개의 소제목을 다루게 될 것 같다. 일단은 간략하게만 살펴보고, 흥미가 생기는 부분은 따로 포스팅을 작성하는 방향으로 들어가고자 한다.

한반도 정치 체제 - 고조선

고조선은 기원전 2333년 경에 단군에 의해 세워졌다고 전해진다. 초기에는 '부족 연맹체'로 시작했고, 점차 중앙집권적인 형태로 발전했다는 것이 일반론이다. 왕이 중심이 되는 '군장 사회'였으며, 왕은 군사와 행정 분야에서 최고 권한을 가졌다. 명칭만 다를 뿐 어찌 보면 로마 시대 황제에 비견할 수 있을 것이다.

부족 연맹체에서 왕을 중심으로 한 체제로 넘어갈 때는 분명 어떤 형태로든 상호 합의가 이루어졌을 것이다. 이후 시간이 흐르며 왕의 권위는 당연한 것이 되었고, 신적인 존재에 의해 주어진 것으로 여겨졌을 수 있다. 과거의 사실이 적당히 잊히거나 포장되는ㅈ건 인간사회의 필연적 변화니까.

아무튼, 왕의 지위와 권위는 사람들 사이에서 신성한 것으로 여겨졌다. 왕은 정치와 행정의 중심임과 동시에, 제사 등 종교적 의식을 주관하는 역할도 맡았다. 그럴듯하게 표현했지만, 현대적 관점으로 보면 "나는 신으로부터 왕으로서의 사명을 부여받았다." 라고 스스로 말하는 것과 같다.

지금 시대에 누군가 저런 소리를 한다면 어떤 꼴이 날지 뻔하지만, 그 당시에는 정당성을 확보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이러한 체제는 고조선에서만 나타난 특이 현상이 아니다. 이후 시대에서도 이를 기반에 둔 정치 모델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정치 체제 - 고구려

고구려는 삼국 중 가장 먼저 중앙집권적 체제를 확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구려 건국의 시조인 동명성왕 이야기는 '주몽'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하다. 오래 전 동명의 드라마를 즐겨봤던 기억도 있다. 물론 나름의 각색을 거친 것일테니 드라마 속 건국 과정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겠지만.

중요한 포인트는 건국 이후다. 정치 체제는 건국 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며 확립되기 마련이니까. 고구려의 왕은 '귀족들로 구성된 회의체'의 지원을 받으며 권한을 행사했다. 로마 시대 원로원과 같은 귀족 협의체는 여기서도 예외가 아닌가보다.

고구려는 '5부 체제'를 통해 지방을 나누고 통치했다. 각 부의 장은 왕에 의해 임명되었는데, 지방 총독이나 제후의 개념으로 이해하면 될 듯하다. 또한, 고구려는 그 위치상 한반도 외에도 여러 방면의 적과 싸워야했다. 이를 위해 강력한 군사력을 상시 유지해야 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강한 군사력은 어떤 식으로든 정치에 영향을 미친다. 현대에 이르러 군대에 정치적 중립 의무가 강조되는 이유는 군사력이 곧 폭력으로 전환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개념이 뚜렷하지 않았던 과거에는 군사력을 앞세워 정치적 입지를 넓히고 다졌을 것이다. 고구려의 정치 체제에 군사력과 귀족 권력이 함께 존재하는 이유다.

한반도의 정치 체제 - 백제

한편, 한반도 남쪽에 위치한 백제는 상대적으로 안정된 지리조건을 갖고 있었다. 선박 제조 및 항해 기술이 많이 발달하지 않았던 과거 시대에 바다는 천혜의 장벽과도 같았을 테니까. 백제의 정치 체제에도 분명 이런 특성이 반영됐을 것이다.

한반도 지리를 생각해보면, 백제가 다스렸던 영역은 그리 넓지 않았다. 뭐... 기껏해야 걷거나 말을 탔을 당시 사람들 입장에서는 꽤 넓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지만, 현대 기준으로는 그렇다. 특히 바로 위를 틀어막고 있던 고구려에 비하면 한참 작은 규모다.

이런 특성 때문인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백제는 왕을 중심으로 한 귀족 중심의 정치 체제를 유지했다. 지방관을 따로 두었다는 기록은 딱히 발견되지 않는다. 전혀 없지야 않았겠지만 특별히 강조할만큼 특별한 점은 없었다는 뜻이려나?

또한 백제는 다른 나라로 틀어막힌 육로 대신 일찌감치 바다로 눈을 돌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백제 시대에 일본과 교류했다는 근거는 여럿 존재하는 것으로 안다. 지리적으로 보자면 신라가 더 가까웠을 텐데 백제와의 교류가 더 활발했다고 하는 점은 따로 알아볼 필요가 있겠다. (신라가 폐쇄적 성향이었다면 가능할 것이다.)

아무튼 백제의 정치적 특성은 국가 내부가 아닌 외부에 중점을 둔다. 배로 닿을 수 있는 인접국과의 무역 및 교류가 활발했으니, 정치 또한 그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백제의 사례는 '영토 규모는 작지만 외교와 무역으로 유지되는 강소국'을 디자인할 때 좋은 모티브가 될 것이다.

한반도의 정치 체제 - 신라

신라는 삼국 중에서는 상대적으로 늦게 중앙집권 체제를 확립한 것으로 나온다. 그렇다면 이전까지는? 귀족들에게 권한이 분산돼 있었을 것이다. 흩어져 있던 권력이 중앙으로 몰리며 왕의 권위가 강화됐고, 그만큼 귀족들의 정치적 역할이 줄어들었다.

신라의 정치 체제 하면 '화백 회의'가 떠오른다. 귀족들이 모여 정치적,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안에 대해 결정을 내리는 회의체였다. 생각난 김에 '각국의 회의체'에 대한 내용도 알아봐야겠다.

조사가 좀 부족한 탓인지, 아니면 그냥 현실이 그런 것인지, 신라의 정치 체제 및 구조에 대한 내용은 분량이 너무 적다. 신라 하면 잘 알려진 '화랑'도 있고... 외세를 빌렸다고는 하지만 어쨌거나 삼국을 통일한 나라인데 특징이 없을 리는 없을 것이다. 이에 관한 내용만 따로 알아봐야겠다.

p.s. 쓰다보니 느낀 건데, '가야'가 빠졌다. 이미 다 써놓은 걸 다시 엎기에는 애매하니 나중에 따로 생각해보는 걸로.

이미지 출처 : 국토지리정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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