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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k Room _ 창작 작업

[설정 참고] 로마 제정 (3) - 초기(과도기), 테트리키아, 중앙집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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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두 글을 통해 로마 제정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로마라는 국가 자체가 역사적으로 매우 비중이 크고 참고할 수 있는 요소가 많다. 그중에서도 '로마 제국' 시기는 특히 그렇다. 왕정, 공화정에 비해 역사도 길다는 점, 현재와 조금이나마 가깝다는 점이 포인트다.

특히 로마 제정은 내부적인 정치 체제가 굵직하게 변해온 역사가 있다. 공화정의 잔재가 남아있던 초기, 권력 분산을 꾀했던 시기, 중앙 집권으로 돌아갔던 이후 시기까지가 포인트다. 공식적으로 초기-중기-후기라는 표현을 쓸 수는 없겠지만, 정치 구조에만 한정한다면 그렇게 봐도 무방할 것이다.

로마 제정 초기, 테트리키아 체제, 그리고 콘스탄티누스 대제에 의해 확립된 중앙집권적 정치체제. 이들은 각각 고유한 특징과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창작 소재로 활용한다면 그 자체로 '서로 다른 국가'를 만들 수 있을 정도라는 생각이다.

로마 제정 - 초기(과도기)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양아들로 알려진 옥타비아누스는 악티움 해전에서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의 연합군을 격퇴했다. 이 전투는 역사에 남은 대 해전 중 하나로 꼽힌다. 한 가지 더, 이 전투는 로마 공화정의 삼두정치를 끝장냈으며 나아가 수백 년간 이어져온 공화정 자체를 종식시킨 상징적 사건이기도 했다.

기원전 27년, 옥타비아누스는 '아우구스투스'라는 칭호를 받으며 로마 제정의 시작을 열었다. 이 시기는 분명 황제 중심의 제국 체제로 분류된다. 하지만 '황제' 하면 떠오르는 절대적 권력을 가졌다고 하기에는 부족함이 많았던 시기이기도 하다.

한 국가의 체제가 바뀐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정치만 해도, 법률 하나가 개정되기까지 무수한 논쟁이 오간다. 개정이 되더라도 그에 맞게 사회가 바뀌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기존 법률에 익숙해진 '관성'이 있기 때문이다.

하물며 국가의 권력 체제가 완전히 바뀐다는 것은 오죽할까. 게다가 공화정 체제에서 권력 분산이 이루어졌고, 각각의 기구들은 상당한 권력을 쥐고 있었다. 타이밍이 잘 맞아 적절한 인재를 황제로 추대하고 보다 강한 권력을 주기로 했지만, 그것이 모두가 만장일치로 원하는 바는 아니었을 것이다.

즉, 로마 제정 초기는 여전히 공화정의 잔재가 남아있는, 사실상 과도기라 봐도 무방할 것이다. 특히 공화정에서 고위직 인사권과 정책, 재정을 맡았던 원로원은 더욱 권력을 쉽게 놓지 못했을 거라 생각된다. 평민들로 구성된 민회보다 특권의식이 있는 귀족들의 연합체였기에 더 그랬을 거라는 나름대로의 추론이다.

물론 황제가 무력을 앞세워 기존 체제를 전복하려 했던 것은 아니었으므로, 시간이 지나며 황제의 권력은 조금씩 강해졌을 것이다. 다만, 본래 원로원이 가지고 있던 권한이 강력했던 만큼, 그것이 황제 중심으로 재편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을 거라 여겨진다.

로마 제정 - 테트리키아 체제

3세기 중반, 주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284-305년)의 통치 기간을 테트리키아 체제의 시작으로 본다. 이름하여 황제와 부황제 통치시기다. 서부와 동부에 각각 한 명씩의 황제와 부황제를 두고 총 네 명이 제국을 나눠서 지배했던 시대다.

테트리키아의 핵심은 제국의 분할 통치다. 제국을 여러 부분으로 나누고 각 지역을 관리하는 시스템이다. '다수의 황제'라는, 어찌 보면 역설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개념을 도입했다는 점에서, 역사상 다시 없을 독특한 정치 체제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제국이 크게는 두 개, 좀 더 세부적으로는 네 개의 지역으로 나뉘어 각 지역에 황제가 존재하는 시스템. 지역마다 총독을 두고 폭넓은 권한을 주되, 실질적으로는 중앙에서 최종 통제했던 시스템에 비하면 중앙집권적 행정이라 할 수도 있겠다. '다수의 황제'가 모두 같은 마음(?)이라면 말이다.

황제 직속의 체제가 가지는 또 하나의 장점이라면, 지역별 군대의 거점이 존재하기 수월했다는 점이다. 총독이 자체적으로 군을 거느리더라도, 반란 같은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제한이 존재했을 것이다. 이는 내부 단속 면에서는 장점이 됐겠지만, 외부 위협에 있어서는 약점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반면 테트리키아 시스템에서는 군사 배치 문제가 더 나았을 거라 본다. 황제 직속의 정예 병력이 제국 곳곳에 거점을 두고 배치된다. 각자 할당된 구역 안에서 모든 군사행동을 할 수 있다면 훨씬 안정적으로 위기 관리가 가능했을 것이다.

테트리키아는 한편으로는 기형적으로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유연하다고도 할 수 있는 정치 시스템이다.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는 것은 기대했던 순기능보다 부작용이 더 많았다는 반증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독특한 발상이 가능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의의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 개인적인 생각을 좀 보태자면, 귀족 중심의 왕정, 시민 중심의 공화정, 다수의 권력자를 둔 삼두정 등 다양한 정치 체제를 시도했던 로마 제국이었기에 가능했던 발상이 아닐까 싶다.

로마 제정 - (다시) 중앙집권

약 십수 년의 짧았던 테트리키아 체제가 끝나고, 콘스탄티누스 대제(306-337년)는 다시 단일 황제 중심의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를 확립했다. 이 시기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제국의 시작점이자 상징과도 같았던 로마를 떠나 비잔티움으로 수도를 옮겼다는 것이다.

비잔티움은 이후 콘스탄티노플, 현재 튀르키예의 이스탄불로 불리는 도시다. 세계지도를 열어보면, 지중해와 흑해를 연결하는 해협을 통제할 수 있는 군사적, 경제적 요충지라 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비잔티움을 중심으로 행정과 군사 조치를 통합하여 효율성을 높였다.

기존에도 중앙집권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시기에 확립된 체제에 비해 부실했다. 건국 300여 년이 지나 확립된 중앙집권제는 상당히 안정적으로 유지됐는데, 여기에는 종교의 역할도 컸다는 생각이 든다.

보통 로마는 '그리스&로마 신화'라는 이름으로 함께 묶이는 다신교 체제로 알려져 있다. 로마 시대의 신 이름들은 그리스 시대보다 덜 유명한 경향이 있지만, 어떤 이름들은 그리스 못지 않게 익숙하기도 하다. 넵튠(그리스의 포세이돈), 머큐리(그리스의 헤르메스), 비너스(그리스의 아프로디테) 등이 대표적이다. (마법소녀 때문에 익숙한가...)

중앙집권 로마 제정에서는 자유로웠던 다신교 체제를 밀어내고 기독교를 공인했다.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종교란 본디 사람들의 믿음을 지배하는 영역이고, 오랜 기간 사람들의 마음 속에 뿌리내려온 관습과도 같은 거니까. 어쨌든 종교적 통합으로 인해 중앙에서 권력을 통제하는 것이 더 수월해졌다고 할 수 있겠다.

이후 서로마와 동로마로 쪼개졌고, 서로마는 그리 오래지 않아 멸망했다. 이 배경에 군사 편제의 특징과 게르만족의 대이동 등 몇 가지 굵직한 사건이 있지만, 디테일한 부분까지는 보다 전문화된 지식이 필요하므로 우선은 다루지 않으려 한다. 어디까지나 나는 창작자의 입장에서 가져올 수 있는 포인트만 살피는 것이 목적이니까.

창작자의 관점에서 중앙집권 제정을 바라본다면 그리 매력적인 포인트가 보이지는 않는다. 너무 흔하고 뻔하다고 할까. 다만, 이 시기의 높은 안정성이 어떻게 가능했는지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해볼 이유가 있어보인다.


이미지 출처 : 프리픽 (freepi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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