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소설을 쓰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도 꽤 오래 전 일이다. 그 사이에 꽤 많은 작품을 읽었지만,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작품은 그리 많지 않다. 아마 다들 엇비슷한 세계관에 익숙한 설정을 사용한 탓도 없진 않을 것 같다.
물론 세계관과 설정이 이야기의 모든 것을 결정하지는 않는다. 진부하기 짝이 없는 설정 안에서도 매력적인 캐릭터와 멋진 이야기를 뽑아내는 경우는 분명 있다. 그것이야말로 작가의 역량이라고 생각하는 주의다. 물론 세계관과 설정까지 매력적이라면 금상첨화겠지만.
세계관과 설정에 관한 책들을 몇 권 사서 읽고 있다. 일 마치고, 운동하고, 게임하고, 블로그도 쓰고, 소설 습작도 하고, 다른 책도 읽고 하느라 진도가 더디긴 하지만 그래도 틈틈이 읽으며 이런저런 의문을 키워가고 있다. 오늘 손에 잡힌 주제는 이거다.
"절대자는 반드시 있어야 하는가?"
판타지 소설 속 '절대자'
경험해봤던 대부분의 소설에는 '절대자'가 등장한다. 여기서 말하는 절대자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하나는 글자 그대로 신(神)적인 존재, 다른 하나는 매우 강한 인물. 각각의 개념에 대해 할 말이 무척 많아질 것 같은 관계로, '매우 강한 인물'에 대해서는 따로 쓰기로 하고, 오늘은 신적인 존재에 대해서만 떠들어보려 한다.
신적인 존재는 언제부턴가 판타지의 공식 중 하나가 돼 버렸다. 이유를 궁금해하지는 않으련다. 뭔가 필요성이 있었기에 등장했을 테니까. 다만 내가 관심을 갖고자 하는 건, '앞으로도 계속 공식으로 남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다.
보통 신이 등장하는 작품을 보면, 신마다 저마다의 '영역'이 있다. 불의 신, 물의 신, 바람의 신과 같이 자연 현상을 관장하는 경우도 있고, 전쟁의 신 또는 사냥의 신처럼 특정 행위를 담당하는 경우도 있다.
보통 이런 설정은 다신론적 세계관을 배경으로 한다. 그리스 신화, 로마 신화, 북유럽 신화, 인도 신화를 비롯해 수많은 신화들을 모티브로 삼을 수 있다. 메소포타미아 신화와 남미 아즈텍, 잉카, 마야에도 다신교 체제가 있었다. 히브리 신화도 있다고 하는데 이쪽은 잘 몰라서 자세히 알아봐야겠다.
아무튼, 판타지에서 신이 등장하는 세계는 너무 많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이 들었다. "얘네(?)들은 대체 왜 있는 걸까?" 하는 생각. 그리고 "꼭 있어야 하는걸까?"라는 생각.
이런 생각을 떠올린 계기는 특별하지 않다. 최근 습작으로 쓰고 있는 소설이 대단원을 향해 가고 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주인공으로 설정한 인물이 너무 무력하게 묘사되고 있다. 어느 정도는 의도한 것이긴 하지만,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초라해져버린 것이다.
이유를 가만히 생각해보니, 조연급 인물들이 너무 강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탓이 아닌가 싶었다. 그들 모두가 신적인 존재인 건 아니지만, 일부는 확실히 신적인 존재인 게 맞으니까.
그러다 보니 이야기가 좀 이상해져버렸다. '인간의 이야기'가 아닌, '신들의 이야기'가 돼 버린 기분이랄까.
강력한 존재의 딜레마
일단 '신'이라는 명사에는 그에 걸맞는 '이미지'라는 게 있다. 기본적으로는 어느 정도 강력함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무력이라든가 뛰어난 지능이라든가 아니면 발이 미친듯이 빠르다든가 하는 것들.
하다못해 도박에서 100%에 가까운 승률을 자랑할 정도로 운이 미친듯이 좋기라도 해야 한다. 뭐가 됐든 일반적인 인물들을 뛰어넘는 뭔가를 가지고 있어야 신 노릇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강력한 능력은 자칫 잘못하면 이야기의 개연성을 깨는 존재가 되기 쉽다. 신의 능력이라면 사실 뜻대로 하고자 하는 걸 이루기가 참 쉬워진다. 자신의 능력과 무관한 일이라고 해도, 자신이 가진 능력을 매개로 다른 신과 거래를 할 수도 있을 테니까.
이렇게 되면 이야기의 긴장감이 느슨해진다. 원하면 어떻게든 해낼 수 있는 존재. 난관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은 이야기의 긴장감과 흥미를 부르는 장치 중 하나다. 신적인 존재에게는 그런 긴장감을 적용하기가 까다롭다.
물론, 다신론 체제에서는 신들도 사회라는 걸 형성한다. 적대적인 관계의 신이 관장하는 영역에 대해서는 영향력을 행사하는 게 제한되거나 불가능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신에게도 불가능한 일이 생기게 된다. 어느 정도 '이야깃거리'가 되는 셈이다.
여기서 또 문제가 발생한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 절대자급 존재들이 서로 갈등을 형성하는 관계. 흥미로울 수 있지만 이렇게 되면 이야기의 주인공 자리가 인간에서 신으로 넘어갈 수 있다. 앞에서 이야기했던 내 습작처럼, 주인공의 존재감이 희미해질 수 있는 것이다.
주인공이라는 건, 작가가 "얘가 주인공!"이라고 정해놓고 끝나는 게 아니다. 이야기의 중심에 머무르며 끊임없이 존재감을 드러내야만 독자들로 하여금 '과연 주인공이구나'라는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강력한 신들 사이에서, 미미한 능력으로는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어 발버둥치는 주인공이 얼마나 존재감을 가질 수 있을까? 그 부분은 의문이 든다. 뭔가 괴로워하는 주인공을 보며 희열을 느끼는 취향이라면 모를까...
신은 반드시 필요한가?
물론 나 역시 이번 습작을 비롯해 신적인 존재를 자주 쓴다. 하지만, 한 번도 신적인 존재들이 왜 등장해야 하는지, 그 이유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그 결과가 이번 습작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신적인 존재 역시 그 본질은 '캐릭터', 즉 등장인물이다. 내가 쓰는 이야기 속에서 그들은 조금 더 강할 뿐 결국은 등장인물의 하나에 불과하다. 이야기 속에서 가장 강력한 존재는 나 자신이어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동안 신적인 존재들을 무의식 중에 나보다 강한 존재들로 여겨왔는지도 모르겠다.
이미 엎질러진 이야기를 이제 와서 바꿀 수는 없다. 이대로 대단원까지 마무리하는 걸로 하고, 다음 작품에서는 이 고민에 대해 나름의 답을 반영해보려고 한다.
이야기 속에 신은 왜 존재하는가? 이야기가 올바르게 흘러가기 위해, 그들은 어떤 포지션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가? 그야말로 '난제(難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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