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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k Room _ 창작 작업/스토리텔링

[고민] 이야기의 '트렌드'에 관하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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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트렌드(Trend)는 어디로 가는가.


이 질문은 나에게 무척 오래된 고민이다. 꽤 오랫동안 이야기를 즐기며 살아왔다고 생각하지만, 그 트렌드에 진지하게 관심을 가진 적은 별로 없었다. 그때그때 구미가 당기는 것을 읽었고, 그 순간 쓰고 싶은 것을 쓰며 지내왔을 뿐이니까.

사실, 그때도 가끔 생각은 했었다. 한참 이 이야기, 저 이야기를 읽다 보면, "요즘은 이런 류의 스토리가 인기구나"라고 생각하게 되던 때가 있었다. 비슷한 배경 설정이나 유사한 플롯의 이야기들이 많이 보였으니,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었달까. 물론 아쉽게도 딱 거기까지였다. 그 이상 깊게 생각했던 적은 없었다.

 

내가 인지했든 아니든, 이야기에는 분명 트렌드가 있다. 이야기의 본질은 사람들에게 들려(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아무리 잘 쓰인 이야기라고 한들,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즉, 사람들의 '마음'을 건드리지 못하면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트렌드 = 사람의 마음'이라 해도 될 것이다.

 

이야기는 어떤 식으로든 사람의 마음을 건드려야 한다 / 출처 : Bing Image Creator

 

 

방정식의 미지수를 하나 풀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머릿속이 맑아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더 어려워졌다고 해야 할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란 열 길 물 속보다도 어려운 법이니까. 며칠의 고민 끝에, 오늘의 주제는 이걸로 정했다. 어렵긴 하지만, 결국은 시도해봐야 할 일이니까.

 

첫 번째 고민. 현재의 트렌드는?

만족스럽지 못한 현재

'현재 트렌드'라는 말에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것이 있다. 바로 '회.빙.환'이다. 회귀, 빙의, 환생의 줄임말로, 이미 한참 전부터 스토리 콘텐츠 시장을 차지하고 있던 메가 트렌드라 할 수 있다. 이미 나올 만큼 나왔고, 지겨워하는 사람도 많지만... 여전히 신작이 멈추지 않는 트렌드랄까. (이제는 조금씩 밀려나고 있는 것 같긴 하다.)

 

뒷북치듯 이 이야기들에 품평을 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왜 저런 주제들이 트렌드에 오르게 됐는지, 그 배경을 생각해본 적이 있었다. 사실, 그리 어려운 질문은 아니었다. 

 

현재의 삶이 만족스럽지 못하니까.

 

 

현실은 힘들고 지친다. 80년대 후반에 태어난 나는, 세상이 크게 변하는 것을 제법 피부로 느끼며 살았다. 물론 철이 일찍 든 편은 아니라서, 여전히 모르는 게 많긴 하지만... 그래도 어릴 적의 삶과 지금의 삶이 상상 이상으로 달라졌다는 것 정도는 안다.

 

그 당시 동네 어른들은, "너희들이 어른이 되면 살기 좋은 세상일 거다"라는 말을 종종 하셨다. 나라 살림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으니, 우리 세대가 성장하면 풍요로운 세상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면서.

 

이 대목에서 다들 씁쓸한 웃음을 짓고 말지도 모르겠다. 아니, 분명히 그럴 거라 생각한다. 나와 비슷한 나이대의 사람들은 물론, 그보다 더 늦게 태어난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본다.

 

내가 성인이 된 이후의 세상은 어땠던가. 살기 좋았나? 글쎄...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다"라고 답하기는 어렵다. 실제로 좋은 부모님을 만난 덕에, 밥 굶은 적도 없고 추위에 떨어본 적도 없다.

 

사고 싶은 것 마구잡이로 다 사면서 돈을 펑펑 쓰고 살았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필요한 건 다 누렸고 큰 고생 하지 않으며 살았다. 부모님의 희생 덕에 무탈하고 평범하게 살 수 있었다는 데는 매우 감사한 마음이지만... 그것과 '지금 세상이 살기 좋은 것'은 별개다.

 

그 당시 어른들이 말했던 '살기 좋은 세상'이 오지 않았다는 데 대한 불평을 하려는 건 아니다. 그저 동네 평범한 아저씨, 아주머니였던 그 분들이 미래가 어떻게 될지 알 도리는 없었을 테니까.

 

그저 지금의 현실이 그렇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풍요롭다고 하자니 나는 가진 게 없고, 미래도 불투명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풍요롭지 않다고 하자니 당장 밥도 굶지 않고, 옷을 못 입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기본적인 건 누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럴 땐 대체 뭐라고 답을 해야 옳은 것일까. 늘 고민이다.

 

출처 : Bing Image Creator

 

'달리 되었더라면'

한때 참 좋아했던 노래가 있다. 멜로브리즈의 <달리 되었더라면>이라는 곡이다. 노래의 주제는 사랑에 관한 것이니, 현실에 빗대기에 적합하지는 않다. 다만 그 제목만큼은 지금의 현실에 딱 어울리는 말이 아닐까 싶다.

 

불만족스러운 현실은 사람들에게 꿈을 꾸게 한다. 내용이 무엇이든 그건 상관이 없다. 그저 지금 현실의 어느 부분이 달리 되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의 연속일 뿐이다. 회귀, 빙의, 환생이라는 트렌드는 그 안에서 탄생한 거라고 생각한다.

 

후회하는 일을 되돌리고 싶을 때, 나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사는 사람이 되고 싶을 때, 아예 모든 것을 끝내고 새롭게 시작하고 싶을 때. 현실에 대한 불만족과 희망사항을 담은, 어찌 보면 참 슬프고 아픈 트렌드가 아닐까 싶다.

 

그런 절절한 바람들이 인간의 상상력과 맞물려 이야기로 탄생했다. 솔직히... '다양성이 뛰어나다'라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판타지, 무협 등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양산형 설정들이 많은 건 사실이니까. 그래도 그러한 트렌드 자체에 대해서는 공감을 표하고 싶다.

 

떠올릴 때마다 후회라는 단어를 곱씹게 되는 많은 순간들. 그때 그 시절들이 달리 되었더라면... 지금의 내 삶은 어땠을까? 쉽게 미련을 거둘 수 없는 건 사실이기에.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이미 한참동안 농익은 회.빙.환 트렌드는 슬슬 무대에서 밀려날 조짐이 보이고 있다. 그러니 이 트렌드에 뒤늦게 편승하는 건 그리 현명한 선택은 아닐 것이다. 애당초 내 취향과 다소 거리가 있기도 하고.

 

문제는, 트렌드와 현실의 괴리가 느껴진다는 것이다. 불만족스러운 현실은 그다지 달라진 게 없는데, 가장 적나라하게 현실의 불만족을 말하던 플롯은 힘을 잃었다. 그렇다면 이야기를 창작하는 사람으로서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모범 답안이야 이미 알고 있다. 현실의 불만족을 다른 방식으로 풀어내는 트렌드로 넘어갔다는 것. 그에 대한 나름의 답을 찾아가는 것이 이야기꾼으로서 내가 앞으로 해야할 일, 꾸준히 지속해야 할 일이 될 것이다.

 

여전히 현실은 가혹하고, 앞날은 불투명하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포용하지 못하는 사회임을 느낄 때마다,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게 두려워진다. 매사에 조심스러워지고, 그러다 보니 인간관계가 피곤하다. 가뜩이나 내향성이 높은 성격이라, 사람 만나는 걸 그리 즐기지도 않는데.

 

그렇게 참고 또 참으며 내 생각을 양보하다보면 어느 순간 욱하고 터져나와 주위를 초토화시킨다. 조용하던 사람이 억눌렀던 감정을 토로하는 걸 직접 본 적이 있다면 알 것이다. 전혀 딴판이 돼 날카로운 말을 쏟아내는 경우가 많다. 나도 그런 기질이 심한 편이다.

 

이 또한 어떤 면에서는 현실의 불만족일 것이다. 그렇다면 나 이외의 다른 사람들은 현실에 어떤 불만을 가지고 있을까? 그 불만들은 어떻게 풀어낼 수 있을까? 여기에 대한 생각을 거듭하며, 이야기의 트렌드를 다시 들여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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