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glo's Fictional Story]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것'은 늘 존재한다.
보통 '예외'라 불리는 것들.
주위의 것들과 다르기에 도드라져 보일 때도 있고,
그 자체를 '개성'이라 하는 목소리도 있다.
'소수'라는 인식이 따라다니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그 인식에 사로잡히지는 말 것을 권한다.
예외라는 이름의 카테고리로 분류된 것 같지만,
그 실체는 어떤 이름으로도 정의하기 어려울 테니까.
- 한 방랑문인이 남긴 에세이 <예외의 철학> 中
"'예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골치 아픈 것들이죠."
노인의 물음에 청년은 망설임 없이 답했다.
"흠… 그래, 골치 아픈 것이긴 하지."
짤막한 답.
더 이상의 대화가 이어질만한 꼬리는… 딱히 보이지 않는다.
노인은 들고 있던 찻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몸을 일으켜 책상 뒤편 서가로 향했다.
수많은 서류가 잘 정돈돼 있는 모습이 가히 장관이다.
노인이 보내왔던 오랜 세월의 산증인 같은 것들이기에, 어떤 근엄한 아우라마저 느껴졌다.
하지만 그 와중에, 책상에 가장 가까운 쪽 공간은 영 엉망이다.
들쭉날쭉 아무렇게나 꽂혀 있는 건 기본.
심지어 철도 하지 않고 되는대로 마구 쌓아놓은 듯한 종이 더미도 있다.
청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이 아는 한, 노인은 이런 식으로 자료를 다루지 않는 사람이니까.
노인은 그 제멋대로인 곳에서 한 움큼의 서류 뭉치를 꺼냈다.
턱-
종이 다발이 둔탁한 소리와 함께 테이블 위에 올려진다.
노인은 다시 찻잔을 집어들고 후룩- 한 모금을 마신다.
"이게… 뭡니까?"
"예외. 아니, 예외'들'이라고 해야겠지."
"……"
청년은 서류 더미의 위쪽에서 손에 잡히는 만큼을 집어들고 훑어보았다.
세계 곳곳 다양한 지리에 대한 연구의 단편들이었다.
"이걸 보여주시는 의도가 궁금합니다."
"별 거 없네. 그저 그만큼 '많다'라는 말을 하고 싶은 거야."
노인은 찻잔을 다시 내려놓고 말을 이었다.
"자네도 겪어봤으니 알겠지만, '연구'라는 짓거리는 말처럼 고상하지만은 않아.
솔직히 때로는 그냥 몸 쓰는 일이나 다름없지 않나 싶을 때도 있으니까.
자네가 보고 있는 그 연구가 특히 그랬네."
핵심과는 상관없는 듯한 이야기였지만, 청년은 그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지리와 관련된 연구는 자료 검색과 검토 못지 않게 직접 발로 뛰어야 하는 일도 많다.
비단 지리 뿐만이 아니다.
연구 주제를 무엇으로 하느냐에 따라 '몸으로 때워야' 하는 일은 얼마든지 있다.
"많은 자료를 확보하다보면 어떤 기준에 따른 분류가 필요해지지.
그리고 분류를 하다보면 어느 기준에 두기도 모호한 것들이 생겨.
나는 흔히 그것들을 '기타' 혹은 '예외'라는 이름을 붙여 미뤄두곤 하지."
"저도 그렇습니다. 다른 이들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구요."
노인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계속했다.
"서로 공통점은 찾기 어려운 것들이야.
그래서 골치가 아프지.
하지만, 그것들은 결코 '소수'가 아니라네."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알겠습니다."
청년은 다시 한 번 손에 든 자료들을 살펴보았다.
이번에는 좀 더 공을 들여 천천히.
마른 습지, 물 목초지, 늪, 반(半, half) 정글, 바위 황무지, 고산 초원, 얼음 사막…
익숙한 단어와 모순을 이루는 표현들이 하나의 명칭 안에 담겨 있다.
아직 정식으로 분류되지 않아 손으로 대충 휘갈겨 쓴 듯한 글자들.
하나의 카테고리를 이루기에는 마땅치 않지만, 쌓아놓고 보니 상당한 양이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전혀 다른 모습이 등장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흥미가 붙는다.
"표정을 보아하니 뭔가 깨달은 모양이군."
"의도하신 것과 정확히 일치할지는 모르겠지만요."
"뭐 어떤가. 그 또한 자네의 결론인 것을."
청년은 빙그레 웃어보인 다음 다시 서류에 몰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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