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일과는 늘 단조로웠다.
눈을 뜨면 잠시 멍하니 앉아 있는다.
창밖을 볼 때도 있고, 그냥 벽을 바라볼 때도 있다.
이따금씩 눈이 마주칠 때면 빤히 쳐다본다.
괜히 머쓱해져 딴청을 피우다가 다시 보면,
처음 마주쳤던 그 방향을 계속 보고 있다.
즉, 나를 본 게 아니라 그냥 그쪽을 봤을 뿐이다.
길어야 몇 분 정도의 멍 때리기가 끝나면,
그는 곧장 책상 앞에 앉는다.
그때부터는 읽기 아니면 쓰기.
그것 외의 다른 일은 하지 않는다.
어떻게 온종일 그것만 할 수 있나?
다들 믿지 않는다.
그럴 만하다.
나도 믿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믿든 믿지 않든 존재하는 현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실제로 그는 그렇게 하고 있으니까.
먹는 것? 못 봤다.
노는 것? 못 봤다.
아, 등받이에 기대 뭔가를 생각하느라 읽기나 쓰기를 중단하는 건 노는 게 아니라는 전제 하에서.
잠은... 자긴 한다.
나보다 늦게 잠자리에 드는 탓에 잠드는 건 못봤지만,
어쨌든 자리에서 일어나는 모습을 볼 때가 있으니까.
어쩌면 내가 먼저 잠들고 나면
하루치 나머지 일들을 해치우는 건 아닐까?
밀린 끼니라든가 운동이라든가 화장실이라든가.
뭐... 솔직히 내 알 바는 아니지만.
말? 하긴 한다.
엄청 가끔인 데다가 선문답인 경우가 많아서 그렇지...
같이 지내는 사이에 한 마디 말도 안 하면,
삭막해서 대체 어떻게 같이 사나 할 수도 있겠지만......
솔직히 말 안 하는 게 더 낫겠다 싶을 때도 있다.
아니, 애당초 대화가 안 통할 거면 안 하는 게 낫지 않나?
무슨 말이냐고?
이제 곧 알게 될 거다.
그 '가끔 말하는 날'이 아무래도 오늘인 듯하니까.
"왜 살지?"
......늘 이런 식이다.
오늘의 컨셉은 시비 걸기인가보다.
그것도 갑작스레 똑바로 쳐다보면서.
"시비 거는 거냐?"
"......"
"그러는 넌 왜 사는데?"
"......"
"자기도 대답 못할 거면서."
"...난 흔적을 남기기 위해 산다."
"뭐?"
못 알아들어서 다시 물어본 건 아니다.
뜬금없는 선문답, 이어지는 반문, 그리고 침묵.
우리 사이의 뜸한 대화(?)에 있어 기본 절차 같은 거다.
"흔적을 남긴다는 건, 살았다는 증명 같은 거거든."
"아, 그러슈? 매일매일 증명하고 계시긴 하네."
책상 위에 널브러진 종이와 펜을 턱짓으로 가리킨다.
웬일로 내 턱짓을 따라 그의 시선이 움직인다.
꽤 두텁게 쌓인 종이뭉치를 한 번 슥 보더니,
다시 시선을 내 쪽으로 돌린다.
아, 자꾸 똑바로 쳐다보고 그래... 부담스럽게.
"이것도 흔적의 일종이긴 하지."
"다른 방법도 많겠지만... 넌 안 하잖아?"
"......"
"맨날 거 앉아서 읽고 쓰기만 하는데. 뭐 다른 증명할 방법이나 있어?"
얻을 게 없다고 하면서도 성심껏 대답해주는 나란 새끼.
참 대견할 정도다. 오지랖이 큰 바다 같아서.
"난... 기다리고 있는 거다."
"뭘?"
"진짜 흔적을 남길 기회를."
"그럼 지금 그것들은 가짜라는 거냐?"
"정확히는 진짜 흔적을 불러올 제물 같은 거지."
"뭐야, 그게."
"곧 알게 된다."
"그러니까 그 곧은 대체 언제 오는 거냐? 너 솔직히 날짜 셀 줄 모르지? 지금이라도 말해. 내가 세는 법 알려줄게."
"......"
"이거 봐, 이거 봐. 불리할 때는 그냥 입 닫기지."
"말해봐야 소용 없으니 안 하는 것."
"뉘예~ 뉘예~ 그르시겠지요."
"조만간 온다. 이제 머지 않았거든."
"그래, 그때가 오면 꼭 좀 알려줘라."
"내가 알려주지 않아도 알게 된다. 어차피 모든 삶은 결국 왔던 곳으로 돌아가게 되니까."
"그래~ 꼭 그러길 빈다. 너랑 말하다 보면 속이 터져 죽을 거 같거든."
"......돌아갈 그때가 되면, 내가 말한 진짜 흔적이 뭔지 알게 되겠지."
결국 애매하게 끝나고 마는 대화.
그가 말한 '진짜 흔적'이란 대체 뭘까.
저 자식 분명, 설명할 수 있는데 안 하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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