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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이론] '패턴'에서 '루틴'으로 - 뇌가 인식하는 재미의 본질

이글로 2025. 6. 9.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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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Pixabay

 

뇌는 정보의 빈 곳을 채우는 데 특화되어 있다.

<라프 코스터의 재미 이론> p.36

 

 

이번 주제를 정하는 데 꽤 고민이 많았다. 뭔가 이렇다 할 주제 문장을 직접 언급한 것은 없지만, 대략적인 내용이 모두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 상황. 게다가 개인적으로도 꽤 흥미를 가지고 있는 주제이기도 하다. 이번 이야기에서 핵심이 되는 주제는, 뇌가 받아들이는 '패턴(pattern)', 그리고 '루틴(routine)'이다.

 

'패턴'과 '루틴'의 개념 비교

패턴(pattern)과 루틴(routine)은 일상에서도 종종 쓰는 표현이긴 하다. 하지만 '흔하게 쓰는가?'라고 묻는다면 사실 그렇지는 않다고 본다. '루틴' 정도는 비교적 자주 쓰이는 편이지만, '패턴'은 막상 그리 자주 쓰이는 느낌은 아니다. 그래서 가장 먼저 이 단어들의 사전적 의미, 그리고 일반적으로 받아들이는 의미를 정리해보았다.

 

구분 패턴(Pattern) 루틴(Routine)
1. 사전적 의미 - 일정한 형태, 양식, 유형이 '반복'되는 구조

- 어떤 현상이나 행동의 규칙 또는 예측할 수 있는 방식
- 규칙적으로 하는 일의 정해진 순서나 방법

- 정해진 일상생활의 틀 또는 습관 그 자체
2. 일반적으로 쓰는 의미 - 어떤 현상이나 행동이 반복되는 모습 (ex 소비 패턴, 행동 패턴 등)

- 디자인적으로 어떤 것이 반복되는 형태 (ex 옷감의 무늬 패턴 등)

- 어떤 영역, 분야 등에서 발견되는 일반적인 경향 또는 특징
- 매일 또는 정기적으로 반복하는 일련의 습관 (ex 아침 루틴, 운동 루틴 등)

- 몸에 익어서 무의식적으로 또는 자연스럽게 하게 되는 일이나 습관

 

사실 사전적인 의미 자체가 크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그 안에 언급된 표현들이 더 핵심에 근접해 있다고 볼 수 있다. 패턴의 경우 '반복'이나 '규칙', '경향'이라는 개념이, 루틴의 경우 '정해진 순서', '습관'과 같은 개념이 그 예다.

 

이 대목에서 패턴과 루틴의 개념을 '재미'와 연결할 수 있다. <라프 코스터의 재미 이론>에서는 "인간의 뇌는 패턴 지향적"이라고 말이다. 말장난 같은 동어 반복이지만, 그는 "패턴 탐색 과정에서도 패턴을 탐색한다"라고 표현한다. 즉, 라프 코스터가 말하는 재미란,패턴을 찾아가는 과정, 그리고 그것을 루틴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느끼는 쾌감이다.

 

패턴, 루틴, 그리고 재미의 관계

새로운 무언가를 처음으로 접했을 때를 생각해보자. 나는 '창작된 이야기'를 주제로 하는 사람이므로, 가장 쉽게 생각하자면 새로운 소설이나 웹툰을 보기 시작했을 때를 들 수 있겠다. 그 외에 취향에 따라 새로운 게임을 시작했을 때, 혹은 잘 몰랐던 분야 또는 주제에 관한 콘텐츠를 처음 접하는 경우를 떠올려도 좋다.

 

처음 접하면 당연히 '잘 모르는' 것이 정상이다. 이는 '혼돈(Chaos)' 상태와 유사하다. 모든 것이 뒤죽박죽 섞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 '새로운 것에 대한 기대감'으로 도파민을 뿜어내는 사람도 분명 있겠지만, 보통 잘 모르는 상태에서는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이때, 무언가 익숙한 것을 발견한다. 이야기라면 어디서 많이 봤던 인물 설정이라든가, 낯익은 세계관이나 설정을 들 수 있겠다. 게임이라면 익숙한 진행 방식도 포함된다. 지식이라면 기존에 알고 있던 용어나 개념이 등장하는 경우에 해당한다.

 

바로 이 익숙한 것이 '패턴(pattern)'이다. 맨 앞에 인용했던 책 속의 문구대로, '뇌는 정보의 빈 곳을 채우는 데 특화'돼 있다. 기존에 자신이 알고 있던 패턴을 토대로 새롭게 접한 것의 정보들을 편집해서 인식하기 시작한다.

 

비슷한 패턴을 여러 번 접한 사람일수록 새로운 것으로부터 패턴을 찾아내는 것도 더욱 빨라질 가능성이 높다. 무협 장르를 많이 읽은 사람들은 그만큼 새로운 무협 스토리를 파악하는 게 빠르다. FPS 장르 게임을 많이 한 사람들은 더욱 쉽게 규칙과 특성을 이해한다. 같은 원리로, 겹치는 영역이 많은 분야 또는 주제를 새롭게 공부할 때는 좀 더 속도가 붙기 쉬워질 것이다.

 

규칙을 많이 접하고 이해할수록 비슷한 규칙을 빠르게 이해할 수 있다 / 출처 : Pixabay

 

패턴 찾기 → 루틴화의 과정

즉, 라프 코스터가 말하고자 하는 '재미'란, 패턴을 찾는 것에서부터 그것이 루틴화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이 대목은 이야기를 쓸 때도 매우 중요한 개념이 된다. 패턴과 루틴을 얼마나 잘 다루느냐에 따라 재미의 유통기한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1. 완전히 낯선 이야기는 오히려 위험

창작자로서 '참신한 이야기'를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다. 나 또한 그렇다. 꽤 많은 자료를 모아두었음에도 선뜻 이야기를 시작하지 못하는 이유는, 뻔하디 뻔한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두렵기 때문이다. 참신하지 못하면 사람들의 선택을 받지 못할 거라는 막연한 두려움이다.

 

하지만 '패턴'의 개념에서 보면, 오직 참신함만을 추구하는 이야기는 도리어 위험할 수 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사람들은 어느 정도 자신에게 익숙한 것(패턴)이 있기를 원한다. 새로운 것을 접한다는 건, 혼돈의 한복판에 내던져지는 것과 같다. 거기서 이정표가 될 수 있는 자신만의 패턴이 있다면, 그것을 기준으로 삼아 자신만의 재미를 찾아나갈 수 있을 것이다.

 

'양판소는 이제 그만'과 같은 표현에는 "나는 참신한 것을 원해"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낯선 이야기를 내놓으면 먹힐까? 글쎄... 너무 낯선 것들만 계속 이어지는 이야기라면 오히려 재미를 붙이기 어려울 거라 생각한다. 매우 복잡한 설정, 방대한 갈등 관계와 같이 일정 수준 이상을 넘어간 새로움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2. 너무 익숙한 것은 생명력이 짧아

물론, 너무 익숙한 것도 문제가 된다. 앞서 말한 '양판소(양산형 판타지 소설)'가 좋은 평을 받기 어려운 이유는 간단하다. 뻔하고 단조로운 인물 설정, 흔히 등장하는 신의 이름, 권선징악의 스토리 구조 등으로만 가득하다면, 읽는 사람 입장에서는 '새로운 것'이 없는 상황이 돼 버린다.

 

누구나 이야기를 소비하는 데 있어 '자신만의 패턴'을 가지고 있다.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는 패턴들 중 무엇 하나 새로운 것이 없다면, 그 사람은 빠른 시간 내에 이야기에 대한 흥미가 식어버린다. '루틴화'가 앞당겨지는 셈이다.

 

익숙한 패턴을 얼마나 던져줄 것인지, 새로운 패턴은 어떤 부분에서 어느 정도로 제시할 것인지, 그것을 '루틴화'하기까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릴 것인지. 이것들이 이야기의 생명력이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될 것인지를 결정하는 요인이다.

 

출처 : Bing Image Creator

 

뻔한 결론, "정답은 없다"

어떤 사람은 '티끌만한 수준의 패턴'으로부터 모험하듯 이야기를 소비하는 것을 좋아한다. 방대한 설정과 복잡한 스토리라인으로 이루어진 대작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그 예다. 요즘 즐겨보는 작품 중 하나를 꼽으라면 웹툰 <쿠베라>가 좋은 샘플이 아닐까 싶다.

 

한편, 어떤 사람은 익숙한 요소가 꽤 많아야만 비로소 재미를 붙이는 경우도 있다. 그 비율은 사람마다 다르다. 익숙한 세계관 안에서 이루어지는 참신한 스토리를 선호하는 케이스다. 사실 이런 사람들이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지 않나 싶다. '특정 장르' 또는 '특정 플롯'이 번갈아가며 유행을 타는 것을 보면.

 

이론적으로 따지자면, '양판소' 또한 충분히 재미있을 수 있다. 익숙한 패턴으로 버무려져 있더라도, 그 안의 세밀한 부분에서 새로운 것들을 잘 버무려 낸다면, 그 또한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요소가 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더럽게 어려워서 문제지만)

 

슬프지만, 결론은 언제나 진부하다. 재미를 자아내는 데 있어 정답이란 없다는 것

 

다만, 이 뻔한 결론으로 끝맺는 와중에도 나름의 만족감은 있다. '재미란 무엇이고, 어떻게 만들어내는 것인가'라는 난해하기 짝이 없는 질문에 대해, 어느 정도 '패턴'이 돼 줄 수 있는 것을 찾은 것 같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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