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정 참고] 사우디아라비아 정치 구조
판타지 창작에서 가장 흔하게 등장하는 국가는 제국과 왕국이다. 현실에서는 감히 제국을 표방하는 나라는 없다. 정치적 움직임이 제국 성향을 띠는 경우는 있지만. 아무튼 제국이 없으니 첫 벤치마킹으로는 왕국을 살펴보려고 한다.
현대의 지구에서 왕국을 표방하는 국가는 여럿이 있지만, 그중 사우디아라비아는 돋보일 수밖에 없다. '절대군주제'를 택한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중동 지역에서 중요한 정치적, 경제적 역할을 하는 국가이기도 하다.
이 나라는 오랜 역사 속에서 왕족 중심의 체제를 유지해왔으며, 이슬람교의 성지인 메카와 메디나가 사우디아라비아의 영토 내에 있어 종교적으로도 큰 의미를 지닌 나라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정치 구조를 통해 창작에 참고할 수 있는 왕국의 정치 체제를 들여다보기로 한다.
사우디아라비아 왕국 - 왕실과 국가 원수
사우디아라비아의 정치 구조에서 가장 중심적인 인물은 당연히 '왕'이다.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글자 그대로 왕. 국가의 모든 권력을 행사하는 당사자이자 국가의 최고 지도자로서 정치, 경제, 군사, 외교 등 모든 분야에 대한 최종 결정을 내리는 역할이다.
창작 세계에 빗대어 보면 사실 왕국보다는 제국의 시스템에 가까워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보통 판타지에서의 왕국은 '절대적'이라 하기에는 다소 애매한 모습을 보일 때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왕이 고위 귀족들의 견제를 받으며 줄타기를 해야 하는 입장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물론 작품마다 케바케겠지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실의 경우 또 하나의 특징이 있다. 이슬람교 성지를 품고 있기만 한 것이 아니라 국가 자체가 이슬람교를 공식 종교로 한다. 즉, 국가의 법률 체계나 규범 등이 이슬람 교리를 따른다는 의미다.
종교적 색채가 강한 나라라는 점에서 보면 창작 세계의 성국과도 비슷한 느낌이다. 실제로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왕의 결정이 종종 전통과 이슬람의 원리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왕이 정치 권력과 종교적 권위를 함께 행사한다는 점에서 제정일치 사회로 볼 수도 있겠다.
이런 총체적 권력을 쥐고 있는 국가는 창작에서 몹시 좋은 모티브가 된다. 석유 자원을 토대로 한 막강한 경제력과 지리적 특성을 조사해두면 여러 모로 영감을 주는 자료가 될 것 같다.
사우디아라비아 왕국 - 정부 기관과 샤라 평의회
왕이 절대적 권력을 쥐고 있다고 해도, 모든 일을 혼자서 할 수는 없다. 당연히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에도 여러 기관과 부처가 있을 것이다. 다만, 최종 지휘권이 왕에게 집중돼 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주요 부처로는 내무부, 외무부, 국방부 등이 있으며, 각 부처는 특정 정책과 행정 업무를 담당한다.
단, 대부분의 국가에서 익숙하게 찾아볼 수 있는 '입법 기관'이 없다. 전통적인 입법 기관이 없이, 왕이 직접 정책을 결정한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대신, 왕이 직접 임명한 150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샤라(Shura) 평의회가 존재한다.
샤라 평의회는 왕에게 자문을 제공하며, 정책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평의회에 법적인 권한은 없으며, 자문을 받더라도 최종 결정권은 여전히 왕에게 있다. 과거로 치면 권한이 매우 축소된 원로원 같은 느낌이다. 혹은 국가 수반을 보조하는 비서실이나 부속실 같은 느낌이기도 하다.
어찌 보면 상당히 안정성이 떨어질 것처럼 보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오랜 기간 정치적 안정성을 유지하고 있으며, 경제적 풍요로움을 누리고 있다. 왕에게 권력이 집중된 절대군주제는 오히려 이러한 조건에 더욱 부합하는 정치 구조일지도 모르겠다.
국가의 경제력과 절대군주제는 과연 연관이 있을까? 궁금증이 생기는 대목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왕국 - 법률 체계와 정치적 자유
왕을 중심으로 한 체제가 안정적으로 돌아간다? 그렇다면 두 가지 궁금증을 품어볼 만하다. 첫째는 법률 체계다. 아무리 왕정이라고 해도, 과거처럼 대놓고 마음 내키는 대로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시대는 아니다. 그랬다간 인터넷에 난리가 나지 않을까.
즉, 왕의 권력도 어느 정도 기준으로 삼을 만한 법 체계를 기반으로 하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다. 실제로 사우디아라비아의 법률 체계는 '이슬람 샤리아'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슬람교 경전인 '꾸란'과 선지자 무함마드의 행적을 기록한 '하디스'를 근거로 만들어졌다는 뜻이다. 종교의 가르침 안에 구성된 법률인 셈이다.
이로 인해 사우디아라비아의 법원에서는 종교 문제와 일반 법률 문제를 모두 다루며, 이슬람 법률에 따라 판결을 내린다. 애당초 법률 자체에 종교적 원칙이 큰 영향을 주었으며, 국가 전체의 문화와 가치관에 깊이 스며들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정치적 자유다. 아무래도 왕정이기 때문에 일반 국민들의 정치 참여는 제한돼 있지 않을까? 실제로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정치적 자유가 제한적이다. 정치 정당이 따로 없는 데다가, 모든 권한이 왕에게 집중돼 있으니, 반대 의견을 표명하는 것이 어려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민주주의 공화국에 사는 입장에서는 도무지 납득하기 어렵지만, 실질적으로 오랜 기간 유지해온 안정성이 모든 반론을 상쇄시킨다. 어쩌면 이슬람교라는 뿌리 깊은 전통이 울타리가 돼 주기에, 절대적 권력이 타락하지 않고 버텨온 것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하늘 아래 영원과 완벽이란 없을 것이다. 정치적 활동이 엄격히 통제되는 환경에서도 최근에는 작게나마 사회적 변화를 이뤄내려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고 하니 말이다. 아무튼 사우디아라비아의 정치 체제는 창작자에게 몹시 좋은 참고자료가 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