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Work Room _ 창작 작업

[설정] 판타지 속 국가 - 성국, 공국, 연합국

728x90
반응형

판타지에 가장 흔히 등장하는 국가 체제라 하면 제국과 왕국이다. 중세 기반의 정통 판타지는 물론, 각종 퓨전 요소가 들어간 경우, 스팀펑크나 SF 등 종류를 가리지 않고 등장한다. 별도 장르처럼 자리잡은 무협도 그 배경은 무림+제국이다.

현실에서 가장 흔한 국가 체제는 보통 공화국이다. 몇몇 국가는 입헌군주국을 채택한 곳도 있다. 상대적으로 적긴 하지만 전제군주국, 연방, 사회주의 국가, 독재국가도 있다. 이들 중 일부는 제국이나 왕국과 유사해보이기도 하지만, 보통은 비현실적인 국가 체제다.

이외에도 판타지에 단골처럼 등장하는 국가 체제가 있다. 오늘은 그 체제들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성국, 공국, 그리고 연합국이다.

판타지 속 국가 - 성국

판타지에서 성국이 등장하는 사례는 흔하다. 성국은 보통 '교황'이 다스리는 국가를 말한다. 국호가 따로 붙기도 하고, 별도 호칭 없이 그냥 '성국'이라 불리기도 한다. '신성'이라는 표현을 붙이는 경우도 있다.

너무 자주 등장하다보니 그러려니 하고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일이 많지만, 설정에 관한 한 '프로불편러'를 지향하는 나는 곱게 넘어가지 않는다. 기어코 몇 마디를 붙여야겠다.

기본적으로 성국은 '종교'를 기반으로 한다. 종교는 모시는 신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단 하나의 절대신을 모시는 종교도 있고, 여러 신을 모시는 다신교도 있다. 여러 신의 존재를 인정하되, 그중 일부 신만을 모시는 경우도 있다.

종교가 한 국가를 이루는 것, 국가로서 체계를 갖추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현실에서 그 어려운 일을 해낸 종교들이 있기에 별로 실감하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종교가 널리 확산돼 수많은 신도를 거느리는 것과, 그 종교 자체가 중심이 된 국가가 세워지는 것은 분명히 다른 개념이다.

당장 세계 역사만 해도 '카노사의 굴욕'이라든가 '아비뇽 유수'와 같이 정치와 종교 사이에 첨예한 갈등이 생겼던 사건들이 있다. 판타지에 등장하곤 하는 성국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왕국이나 제국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거나 견제하겠다는 의도가 깔린 국가 체제라고 봐야 한다.

'그냥 여러 국가들 중 하나'로 가볍게 설정하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로 성국은 일반적인 국가들과는 전혀 다른 논리로 유지돼야 옳다고 본다. 어차피 판타지는 상상의 산물이니 현실성에 너무 얽매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개연성을 위해, 보다 흥미로운 갈등 구조를 위해 좀 더 틀을 벗어난 성국을 만나보고 싶다.

판타지 속 국가 - 공국

제국이나 왕국에는 '귀족'들이 존재한다. 귀족이라는 계층을 어떤 식으로 설정하는지는 제법 다채롭다고 생각한다. 태생적으로 주어진 계급으로 볼 수도, 어떤 조건을 만족해 후천적으로 얻어낸 계급으로 볼 수도 있다. 그 외의 다른 방법도 있을 것이다. 귀족이라는 계층 자체는 이미 한정된 틀을 벗어났다.

하지만 귀족들이 매여있는 '오등작'은 여전히 틀에 갇힌 느낌이다. 공작, 후작, 백작, 자작, 남작으로 이어지는 다섯 개의 귀족 계급. 이들 중 한두 개가 빠지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은 이 틀 안에서 다뤄진다. 계급의 순서가 바뀌는 경우도 드물다.

이들의 현실적 모티브는 '봉건제'다. 군주가 가신을 삼고 그에게 다스릴 영토를 내주는 방식, 혹은 기존에 영지를 가진 자가 군주에게 충성을 맹세하며 국가로 편입되는 방식. 여기서 '공국'이라는 시스템이 탄생한다.

일반적으로 귀족의 영지는 국가의 소속이다. 귀족은 황제나 왕에게 그 영지를 다스릴 권한을 부여받을 뿐이다. 대를 이어 세습은 되겠지만 기본적으로 국가의 틀을 벗어나지는 못한다. 반면 공국은 다르다. 국가에 소속됐다는 대전제는 있지만, 국가로서 별개의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

즉, 공국은 단순히 대공이나 공작, 혹은 공주가 최고 권력자가 되는 국가 체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공작이 다스린다고 해서 모두 공국이 되는 것도 아니다. '공작령'과 '공국'은 엄연히 다른 시스템이다. 이를테면 어떤 제국에서 중심부로부터 떨어진 지역에 '총독을 파견하는 것'과 '제후국을 세우도록 하는 것'의 차이다.

공국은 제국이나 왕국에 속해있지만 별도의 법 체계를 가질 수도 있고, 정치적으로 다른 노선을 걸을 수도 있다. 따지고 보면 '새로운 국가'를 세우도록 용인해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산하에 있는 것은 맞지만, 힘이 생기는 것을 그만큼 견제해야 할 대상이 된다.

성국과 마찬가지로 공국 역시 별로 대수롭지 않게 남발되는 경향이 있다. 존재만으로도 무수한 정치적 갈등과 권력 암투를 유발할 수 있는 시스템인데도. 공국의 주인은 일반적으로 적지 않은 권력을 쥐게 된다. 자신보다 높은 이에게 부여받은 것이지만, 언제까지고 고분고분하리라는 보장은 없지 않은가.

판타지 속 국가 - 연합국

성국이나 공국만큼은 아니지만, 연합국 역시 낯설지는 않은 시스템이다. 구체적인 형태는 다양하다. 부족연합, 도시연합, 소왕국연합 등등. 현대에도 간혹 존재하는 '연방'이 판타지에 등장하기도 한다.

연합국/연방은 어떤 면에서 보면 '지방자치제도'와 유사하다. 하나의 국가로 묶여있지만, 실제로는 지역별로 각자의 자치권을 인정해주는 것이 핵심이니까. 차이가 있다면 '자치권의 범위'일 것이다.

지방자치단체는 별도의 행정권을 갖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중앙정부 아래에서 일부 권한만을 위임받는다. 간단한 예로, 법 체계를 따로 만든다거나 하지는 않는 것처럼. 반면 연방은 더 폭넓은 권한을 행사한다. 법을 따로 만들어 운영하기도 하고, 다른 지역과의 왕래를 통제하기도 한다.

즉, 같은 나라로 묶여있으면서 실상은 별개의 나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연방이라는 체제에서 더 나아간 형태가 바로 연합국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연방은 중앙정부를 구성하고 각 지역의 권력이 그 아래에 있다는 암묵적 동의가 있지만, 연합국은 중앙정부와 각 국가를 동등하게 보거나 중앙정부 자체가 없을 수도 있으니까.

생각해보면 과거 로마 제국, 그보다 더 먼저 존재했던 알렉산드로스 제국도 비슷했을 것이다. 동양 쪽에서는 몽골 제국을 들 수 있겠다. 두 개 대륙을 아우르는 넓은 통치영역에 지배자는 단 한 명이라면, 그 아래에는 서로 너무 이질적이어서 도무지 섞일 수 없는 집단들이 존재했을 것이다.

서로 섞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지배자의 그늘을 벗어날 수도 없는 상황이라면, 연방이나 연합국과 유사하게 정치구조를 형성하고 지내지 않았을까.


이미지 출처 : 프리픽 (freepik.com)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