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와 같은 가상세계에도 '국가'가 존재한다. 인간이라는 종족을 완전히 배제한다면 모를까, 국가가 등장하지 않는 가상세계는 찾아보기 힘들다. 꼭 국가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어떤 형태로든 거버넌스(governance)는 존재한다.
창작 세계에서의 국가는 대개 간단한 수준까지만 언급된다. 디테일하게 설정하더라도, 정치 싸움이 메인 소재가 아닌 이상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자연스러운 이야기 전개를 위해서는 필요하다. 본래 설정 작업이라는 게 그런 거니까.
국가의 디테일한 구성을 이야기하기 위해 '내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자 한다. 국가의 내각 구성은 단순한 정치적 구조가 아니다. 그 나라의 역사, 경제 구조, 문화와 관습 등을 반영한다. 물론 그런 것과 상관없이 필수적으로 존재해야 하는 것들도 있지만.
어쨌든 세계와 국가, 그리고 각 국가의 내각을 세심하게 구상하는 것은 '풍성한 세계관'을 만들기 위한 필수사항이다. 세계관, 정치 체제, 그리고 부처 종류라는 3개 소주제를 중심으로 판타지 국가의 내각 구성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본다.
판타지 내각 구성 - 세계관 설정
어떤 사람은 동의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국가는 현실을 반영한다. 국가란 결국 인간 사이의 약속으로 만들어진 집단의 확장이니, 현실을 반영하지 않는다고 하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이다.
판타지 세계도 마찬가지다. 이 세계의 국가, 그리고 내각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세계의 현실, 즉 배경 설정이 명확해야 한다.
예를 들어, 마법이 등장하고 널리 사용되는 세계관이라면, 그 세계에 존재하는 국가에도 그것이 반영될 가능성이 높다. '마법부'라든가 '마법관리국' 같은 이름으로 말이다. 자연스럽게 국가의 관리(공무원) 중에도 마법사가 존재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한편, 게임으로 널리 알려진 '몬스터 헌터'와 같은 세계관을 생각해보자. 국내 영토 곳곳에 몬스터들이 흔하게 출몰하는 세계라면 치안 유지 목적에서라도 당연히 국가 차원에서 몬스터 퇴치라든가 관리를 담당하는 부서가 있을 것이다.
혹은 인간 외의 여러 종족이 공존하는 세계라면? 내각 구성에도 각 종족을 대표하는 인원들이 있다거나, 소수종족 인권을 챙기기 위한 부서가 있을 수 있다.
앞에서도 말했던 것처럼, 이런 디테일한 설정은 이야기 속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디테일한 설정이 존재할 때와 없을 때의 이야기 전개는 분명 차이가 있다. 시작부터 디테일까지 잡아놓을 필요는 없지만, 대략적인 국가 운영 체계가 어떨지는 고려해두는 편이 도움이 될 것이다.
판타지 내각 구성 - 정치 체제
대략적으로라도 내각 구조를 구상해두려면 '정치 체제'도 고려해야 한다. 정치 체제가 곧 내각 구성의 뼈대니까. 간단한 예로, 황제나 왕이 존재하는 군주제 국가에서 총리대신이 맡는 역할과, 공화국 형태의 국가에서 총리대신이 맡는 역할은 다를 것이다. 성국 체제라면 총리대신이라는 직책이 없을 수도 있다.
물론, '어떤 국가 체제에는 이런 직책이 있어야 한다'라든가, '이 직책은 이런 역할을 한다'라고 명시된 공식이 있는 건 아니다. 디테일한 명칭과 담당 영역, 권한 수준은 작가가 설정하기 나름이다. 직책의 명칭이 역할까지 규정하는 건 아니라는 이야기다. 설령 그런 공식이 있다한들, 어차피 창작 세계에서는 우회할 방법이 얼마든지 있다.
국가 형태와 정치 체제는 대개 완전한 창작이 어렵다. 정치나 행정 분야에 심도 있는 지식이 있는 경우라면 모를까, 보통은 현실의 국가 정치 체제를 모티브로 변형해서 쓰는 것이 일반적일 것이다. 이때 창작하는 세계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으면 전혀 생뚱맞은 내각 구성이 등장할 수도 있다.
왕국 체제라면 왕이 내각을 직접 임명하고, 왕의 동생이나 자녀들이 주요 직책을 차지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왕의 권력이 약하면 주요 권한을 가진 자리를 두고 귀족들과 대립할 수도 있다. 반면, 민주적인 구조를 채택한다면 국가의 대표/지도자는 누구이며 어떤 식으로 선출할 것인지도 중요할 수 있다.
이런 세세한 설정까지 필요한가 싶을 수 있지만, 실제 이야기를 쓰다 보면 이런 디테일 때문에 전개가 막히는 일이 수두룩하다.
판타지 내각 구성 - 부서 종류
정치 체제에 따른 직책 구성과 마찬가지로, 내각을 구성하는 부서 역시 세계관과 정치 체제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다. 가장 쉬운 예를 들자면 우리나라의 '통일부'를 들 수 있겠다. 통일부는 분단국가라는 특수한 상황이 있기에 존재할 수 있는 부서다. 다른 국가에서는 굳이 필요하지 않다.
즉, 세계관을 어떻게 설정하는지, 국가의 위치와 환경이 어떤지에 따라 부서 구성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다만, 모든 설정 요소와 무관하게 기본적으로 존재해야 하는 부서들은 있다. 국가 예산을 담당하는 부서라든가, 법 관련 업무, 군사 관련 업무를 총괄하는 부서 등이 그 예다.
이런 것들은 현실 세계의 국가들이 어떤 식으로 내각을 구성하는지 참고하면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사우디아라비아를 시작으로, 틈틈이 세계 각국의 정치 체제를 살펴보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여기에 각 부서의 기능을 자유롭게 통합하거나 분할하거나 하면서 자신만의 가상세계를 만들어보면 된다.
또한, 기본적으로 존재하는 부서에 더해 판타지 요소를 추가해 독특한 부서를 창조하는 것도 필요하다. 보통 판타지 세계에서는 마법이 중요한 개념으로 작용한다. 이에 따라 마법의 사용 및 관련 규제를 담당할 "마법부" 혹은 유사한 기능을 하는 부서를 등장시킬 수 있을 것이다.
정치 싸움을 주요 소재로 하고 싶거나, 에피소드 중 하나로 사용하고 싶다면 내각 부서 간의 견제 구도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기본적으로 내각 부서는 국가 운영과 발전을 위해 협력해야 하는 입장이지만, 인간인 이상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본분을 저버리거나 게을리 하는 일은 흔하니까.
각각의 부서들이 온전하게 모든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것보다는, 서로 합의하고 협력하는 구조를 만들어 적당한 견제가 가능하게끔 설정하는 것이 여러 모로 유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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