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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k Room _ 창작 작업

[설정 참고] 로마 제정 (2) - 테트라키아, 황제와 부황제, 두 개의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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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라는 이름을 사용했던 나라의 연혁을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이렇다. B.C. 753년부터 B.C. 509년까지 약 240여 년이 '왕정', B.C. 509년부터 B.C. 27년까지 약 480여 년이 '공화정', 그리고 B.C. 27년부터가 '제정'이다.

 

로마의 제정은 딱 몇 년까지라고 잘라 말하기가 어렵다.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알고 있듯, 서로마 제국과 동로마 제국으로 나뉘어 각기 다른 시기에 멸망했기 때문이다.

 

물론 더 빨리 멸망한 서로마 제국(A.D. 476년 멸망)을 기준으로 해도 약 500년을 넘게 존속되긴 했다. 역사적으로 보자면 공화정에 비해 그리 뚜렷하게 긴 시간은 아니지만... 영토의 넓이를 생각했을 때 상당히 안정적인 체제였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동로마 제국은 A.D. 1453년까지 이어져 거의 세 배 가까이 명맥을 유지하기도 했고.

 

거대한 로마 제국이 서쪽과 동쪽으로 나뉜 출발점은 '2명의 황제'였다고 본다. 이미 이 지점에서부터 상식이 흔들리는 개념이니 말이다. 물론 실제로 로마에서 사용했던 명칭이 '황제'는 아니었을 테고, 우리에게 익숙한 표현으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그렇게 전달됐을 테지만.

 

어쨌든, '최고 권력자'라 할 수 있는 황제가 2명이 됐다는 것부터 독특한 지점이다. 창작자의 입장에서 구미가 당길 만한 관점이랄까. 오늘은 이 주제에 대해 몇 마디를 끄적여두려고 한다.

 

로마 제정 - 테트라키아

황제는 제국이라는 정치 체제 하에서 단 하나의 절대적인 권력자이자 지도자다. 군사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최종 결정권을 갖는 만인지상의 자리라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다. 역사상 제국을 표방한 국가들이 주변국은 물론 멀리 떨어진 국가들까지 정복하며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던 근본적 이유라고도 볼 수 있겠다.

 

초창기 로마 제국은 그런 익숙한 시스템을 따랐다. 하나의 황제, 그리고 각 지역별 '총독'을 두고 관리하는 체제 말이다. 문제는 역시 '물리적 거리'였을 것이다. 총독에게 많은 권한을 줬다고 해도, 정말 중요한 부분은 황제의 결재가 필요했을 것이다. 아니면 하다 못해 사후 보고라도 받든지.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이로 인해 발생하는 번거로움은 상당하다. 쉽게 비유해보자. 조직에서 어떤 문제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으려면 최선의 방법은 무엇일까? 자신보다 높은 지위에 있는 상급자에게 결재를 올리는 것이다. 

 

물론 현실에서는 결재를 해준 상급자가 오롯이 책임을 지지 않는 경우도 많다. 사안에 따라 상급자만 100% 책임을 질 수 없는 부분도 있을 테고. 하지만 원칙적으로 상급자의 결재는 '내가 내용을 확인했고 승인했다. 문제가 생길 시 책임을 지겠다'라는 의미가 포함된다.

 

정치 체제에도 이런 시스템은 있었을 것이다. 총독이 가지고 있는 권한이 많다고 해도, 그 권한이라는 게 자로 잰듯 명확하게 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보고를 하고 결재를 받아 진행해야 하는데, 물리적인 거리가 엄청나게 멀다. 회신이 오기까지 뚜렷한 결정이 내려지지 않는다면? 답은 뻔하지 않을까.

 

이에 디오클레티안스라는 황제가 제국의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새로운 시스템을 창안했다. 테트라키아(Tetrarchy)라 불리는 이 시스템은 두 명의 아우구스투스와 두 명의 카이사르를 둔 정치 시스템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말로 번역하자면 아우구스투스는 '황제', 카이사르는 '부황제'다.

 

테트라키아가 도입되며 한 점으로 집중됐던 권력이 분산됐다. 이 또한 충분하다고 볼 수는 없었겠지만, 적어도 보고 체계상 감수해야 했던 물리적 거리가 엄청나게 줄어드는 효과는 있었을 것이다. 또한, 황제와 부황제가 어느 정도 권한을 나눈다면 업무 처리 속도도 더 빨라졌을 것이다.

 

로마 제정 - 황제와 부황제

기본적으로 황제의 역할과 권한이 달라진 것은 아니다. 정치, 군사, 경제, 종교 등 국가적으로 중요한 모든 권한은 황제에게서 나왔다. 다만, 담당하는 영역이 나뉘었다는 것이 큰 특징이다. 하나의 제국에 두 명의 황제라니, 그야말로 발상의 전환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서부의 아우구스투스(황제)는 지금의 이탈리아 로마 또는 밀라노에 머물며 제국 서부를 다스렸다. 반면 동부의 아우구스투스는 현재 튀르키예 남부, 시리아와의 국경 지대에 위치한 누사이빈(과거 명칭 니시비스)이나 안타키아(과거 명칭 안티오크)에 머물며 제국 동부를 다스렸다. (동부는 왠지 이스탄불일 거 같았는데 이건 좀 의외다)

 

구체적으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각각 관할했는지는 굳이 따지지 않겠다. 중요한 것은 두 황제가 일정한 영역을 나누어 관장하면서 같은 권한을 누렸다는 점이다. '각 통치자들은 둘 중 더 가까운 황제에게 보고하라'라는 유연한(?) 시스템은 아니었겠지만, 무조건 로마로 보고해야 했던 때에 비하면 한결 나아졌을 것이다.

 

물론, 제국 영토의 광대함을 생각하면 이 또한 충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를 보완하는 것이 바로 '카이사르(부황제)'다. 이들은 황제의 권한 중 일부를 위임받아 수행했다. 서부의 카이사르는 밀라노 또는 이탈리아 동북부 트리에스테에 머물렀고, 동부의 카이사르는 니시비스 또는 알렉산드리아에 머물렀다.

 

황제와 부황제가 같은 지역에 머무는 시기가 있었을지도 미지수긴 하지만, 그 역시 그리 중요한 사항은 아니다. 포인트는 서로 다른 지역에 권한이 분산된 권력자가 머물고 있었다는 것이다.

 

사실 어떤 점에서 보면 부황제는 타 지역에 파견된 총독과 유사하다. 다만 총독에 비해 군사가 외교 면에서 직접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의 폭이 좀 더 컸다고 봐야 할 것이다. 

 

또 하나 중요한 포인트는, 부황제가 '황제의 후계자'로서 기능했다는 점이다. 예로부터 국가의 최고 권력자가 사망했을 때 정권을 승계하는 과정에서는 엄청난 혼란이 발생하곤 했다. 이 부분을 좀 더 원활하게 수습하기 위해 시스템으로 정립해놓은 것이 아닐까 싶다.

 

우리 역사에 비춰보면 황제와 황태자, 혹은 왕과 왕세자의 개념처럼 볼 수도 있겠다. 황태자나 왕세자가 실제 국정에 얼마나 관여할 수 있었는지에 따라 상세한 구도는 달라졌겠지만, 부황제 시스템을 유지한 것이 정치적인 안정성을 유지하는 데는 확실히 도움이 됐을 거라 본다.

로마 제정 - 두 개의 제국

신기한 대목이다. 인간의 본성은 언제나 권력을 탐하게 마련이라고 생각했다. 서로 나눠진 영역에서 절대적인 권한을 행사하는 사람이 하나 이상이 되면 자연스레 권력 투쟁을 벌이게 되지 않을까? 그게 '하나의 제국'으로서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테트라키아 시스템을 도입한 디오클레티안스 황제는 그걸 몰랐던 걸까? 역사적으로 볼 때 테트라키아 체제는 그리 오래 가지 못한 것으로 나온다. 얼마나 갔을 거라고 생각하는가? 100년? 아니면 적어도 50년은 가지 않았을까?

 

아니, 실제로는 채 20년을 못 갔던 것으로 본다. 디오클레티안스 황제에 의해 테트라키아가 도입된 시기가 A.D. 293년, 그리고 후계자 간 권력 다툼 및 내전으로 체제가 약화된 시점이 대략 12년 후인 A.D. 305년이다. 이후 약 20년 후인 A.D. 324년에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최종 승리자가 되면서 끝을 맞이했다. 아무리 길게 잡아줘도 30년 정도밖에 유지되지 않은 셈이다.

 

시도는 참신했다. 다만, 상식적으로 봐도 오래 가기는 어려운 체제였다. 각 카이사르는 자신의 지역에서 군사적 및 행정적 권한을 행사할 수 있었고, 황제의 직접적인 간섭을 덜 받는 구조였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자는 높은 확률로 타락한다. 역사상 모든 권력자가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권력자가 그랬다.

 

하나의 제국이지만 완벽하게 다른 영역과 독립된 절대적 권한을 가졌다면? '우리는 로마 제국인'이라는 일종의 '브랜드' 외에 무엇으로 그들을 묶을 수 있을까? 단일민족도 아니었을 테니 혈통으로도 불가능했을 텐데. 당사자가 아닌 한 알 도리는 없을 것이다. 디오클레티안스 황제의 머릿 속에만 답이 있겠지...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공식적으로 황제-부황제 시스템을 종료시켰지만, 그 아이디어 자체는 완전히 버리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최고 권력자인 황제의 권한은 유지시키되, 넓은 영토를 고려해 어느 정도 권한의 분산은 추진했다는 기록이 많다.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정반합'의 구조야말로 창작자로서 들여다봐야 할 부분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더 나아가, '두 명의 황제'라는 발상이 결국 로마 제국이 동서로 쪼개진 원인이 되지 않았나 싶다. 짧았다고는 해도 제국이 둘로 나뉘어 돌아갔던 시기를 누군가는 기억하고 있었을 것이고, 그를 바탕으로 더 다듬어진 아이디어가 어딘가에서 싹을 틔웠을 테니까. 언제나 그렇듯, 역사는 참 흥미롭다.

 

이미지 출처 :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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