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제정은 로마 역사에서 몹시 중요한 정치 체제다. 현대 민주주의와도 유사한 점이 보였던 공화정에서 다시 절대적인 권력을 추구하는 체제로 회귀하다니. 겉으로만 보면 납득하기 힘든 현상이다.
이는 '공화정'과 '제정'이라는 단어에만 치중해서 바라볼 때의 생각이다. 실제로 로마 제정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제국'과는 여러 모로 달랐다. 황제가 커다란 권력을 쥐고 있는 건 맞지만, 판타지 등에서 접하게 되는 무소불위의 권력과는 궤가 다르다.
무엇보다 로마는 이미 왕정의 종말과 공화정으로의 전환을 경험했다. 오래 전의 역사는 기록으로만 전해지기에 구체적인 현실은 잊을 수도 있다지만, 꾸준히 이후 시민들의 정치 참여와 견제를 기반으로 한 권력 분산의 정신이 한순간에 사라지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다.
황제 중심의 정치 구조에서도 원로원은 건재했다. 그렇다면 황제의 권한은 무엇이 달랐을까? 본 글에서는 로마 제정의 핵심 요소인 황제와 원로원, 그리고 넓은 제국령을 어떻게 통치했는지 그 방식에 대해 정리해둔다.
로마 제정 - 주요 정치기관
제정은 기본적으로 '황제'에 의한 절대적 권력을 인정한다. 군사, 정치, 종교 관련 권한을 모두 행사했고, 공화정에서 원로원이 가져갔던 정책 결정에 관한 권한도 황제에게 귀속됐다. 민회에 주어졌던 법률 제정 및 시행 권한도 다시 황제의 몫이 됐다.
기껏 분산됐던 권력은 왜 다시 한 곳으로 모였을까? 그 사이에는 복잡한 이야기들이 여럿 있다. 이리저리 엮인 스토리를 한 마디로 정리할 수 있는 단어가 있다면 바로 '불안정'이 아닐까 싶다. 권력을 둘러싼 갈등과 혼란, 그로 인한 사회적 불안정이 원인이 된 것이다.
로마 시대의 유명한 인물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율리우스 카이사르'다. 공화정의 권력을 잡고자 했고, 독재를 행했으며, 결국 잔혹한 끝을 맞이한 그의 일대기 역시 공화정과 제정 사이에 있었던 일이다.
게다가 로마 시대는 주위 정세가 지금처럼 평화롭지 않았다. 로마 입장에서는 야만족이라 부르던 다른 민족들이 여럿 있었기 때문에 군사적 긴장이 늘 존재했다. 이런 시기에 내부적인 불안정은 사람들로 하여금 보다 강한 리더십을 원하게 만드는 요인이었을 것이다.
본래 민주적인 절차를 따르자면 시간이 오래 걸리게 마련이다. 그렇게 나온 결론이 모두를 납득시킬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주위 정세가 불안정한 상황이라면 논의와 협의를 기반으로 한 정치적 의사 결정은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단점이 부각되기 마련이다. 이런 시기는 강력한 지도자에 의한 '교통정리' 수요가 대두되기 쉽다.
로마 제정 - 원로원의 권한 축소
로마는 왕정과 공화정을 거치며 원로원의 권한이 강력하게 자리잡았다. 특히 공화정 시대에는 국가 주요 정책을 결정하고 고위 공직자에 대한 인사권을 가졌다. 하지만 제정에서는 그 권한이 크게 감소했다. 어찌 보면 왕정 시기의 제한된 역할보다도 더 축소된 권한을 가진 게 아닌가 싶다.
제정 시대의 원로원은 황제의 정책에 대해 승인하거나 조언하는 역할로 제한됐다. 왕정 시대와 차이점이 있다면 구성원의 차이일 것이다. 왕정 시대의 원로원은 주로 귀족(파트리키)들로 구성됐다. 하지만 제정 시대의 원로원에는 황제가 임명한 인물들이 포함됐다. 이로 인한 차이는 크다.
현대의 시스템에 비유하지면, 국회의 일부를 대통령이 임명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얼핏 봐도 정권의 '거수기'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위험성이 느껴진다. 이는 독립된 정치 기구로서 작동하던 원로원의 위상이 크게 추락했다는 의미가 된다.
아마 제정 초기에는 이런 모습이 그다지 두드러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공화정의 관습이 어느 정도 남아있었을 것이고, 그런 상황에서는 황제 역시 대놓고 원로원을 무시하는 실수를 범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문제는 항상 하나의 체제가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후에 나타나는 법이다.
창작자의 관점에서 원로원이라는 기관은 여러 모로 참조할 것이 많은 기구다. 꼭 '원로'라는 개념에 집착할 필요는 없지만, 권력을 견제하고 나눠가지기에 적절한 명분을 가진 기구가 필요하긴 할 테니까.
특히 요즘 시대에는 절대적 권한을 가진 독재 체제가 그다지 공감을 살 수 없다고 본다. 어떠한 형태의 정치 구조를 디자인하든, 원로원의 구조와 역할, 상세한 기능 등은 참조하는 것이 좋겠다.
로마 제정 - 지방 통치 시스템
로마 제정은 광대한 영토를 지배했던 시기다. 이탈리아 반도에 집중돼 있던 왕정 시대, 지중해 연안 위주로 다스렸던 공화정 시대에 비하면 엄청나게 넓어진 영토를 갖고 있었다. 사실상 유럽 대륙의 상당 부분을 호령했던 대제국이었으니까.
실제로 얼마나 넓었는지에 대해서는 따로 알아보도록 하자. 중요한 건 그 시대의 문명을 고려했을 때 원활한 행정이 쉽지 않았을 거라는 점이다. 지금처럼 통신 체계가 탄탄하게 구축된 시대에도, 영토가 넓은 나라들은 중앙집권적 통치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통치란 언제나 '이론'과 '실물'이 공존하는 영역이니까.
로마 제국은 곳곳에 도로망과 뱃길을 연결해 최대한 빠른 교류를 꾀했지만, 거기에도 한계는 있었을 것이다. '총독(Provincial Governor)'이라는 개념이 자리잡게 된 이유다. 이 시대를 배경으로 했던 시뮬레이션 게임 '시저(Caesar)' 시리즈는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 게임을 즐겼던 경험에 비추어 보면, 각 지방의 총독이 어느 정도 권한을 가졌는지, 실제 로마 제국의 통치와 행정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졌는지 대략 감을 잡을 수 있다.
총독은 황제가 임명하는 자리인만큼 분명 황제의 신하였다. 다만, 생각을 해보자. 기껏해야 마차(전차)나 배가 최고의 이동수단이던 시절. 비행기로도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거리를 쫓아오려면 얼마나 시간이 걸렸을까. 이런 상황에 이것저것 결재 받아가며 일을 진행하다간 그 지방은 통째로 망하기 십상이다.
자연스레 총독은 정말정말 중요한 이슈가 아닌 이상 스스로 판단해 처리하고 그 결과만 보고하는 구조가 됐을 것이다. 이런 구조가 무르익으면서 '황제와 부황제'가 등장하는 계기가 됐을 것이고, 나중에 동로마 제국과 서로마 제국으로 분할되는 단초를 마련하지 않았을까 싶다.
다음 글로는 '국가는 하나인데 황제는 하나가 아닌' 이 기묘한 제국 체제에 대해 글을 써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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