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머릿속의 '로마' 하면 공화정과 제국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로마의 초기는 왕정이었다고 한다. 기원전 753~509년까지 초기 로마 사회의 정치적 기초를 다진 시기라고. 그나마 찾아보니 정치적 시스템상으로는 비슷해보인다.
로마 왕정은 '왕의 권력'과 '귀족들의 영향력'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구조를 지니고 있었다. 왕은 강한 권력을 쥐고 있었지만 절대적이지는 않았다. 게다가 로마의 상징적(?)인 기구 '원로원'까지 있다. 정치 구조가 복잡해보인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가상 세계관을 설정할 때는 참고할 수 있는 요소가 많을 듯하다. 로마 왕정의 정치 구조를 구성하는 3요소, 왕과 원로원, 그리고 귀족에 대해 정리해둔다.
로마 왕정 - 왕의 권한과 정치적 역할
대부분의 왕정이 그렇듯, 로마 왕정에서 왕은 군사적, 정치적, 종교적 권한을 모두 가진 절대적인 통치자였다. 왕의 결정은 법률과 정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전쟁과 외교 문제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여기까지의 느낌만 보면 판타지의 '제국'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실상은 좀 다르다. 최종 결정권을 가진 것은 맞지만, 그 과정까지 가는 데 이래저래 간섭이나 견제를 받는 느낌이다. 판타지의 많은 왕국들이 그렇듯.
로마 왕정에서 왕이 특이한 점은, 귀족들에 의해 선출되는 형태였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왕의 개념과 확 다른 부분이다. 특히 '선출'이라는 개념은 뭔가 민주적인 느낌이 아닌가. 차이가 있다면 국민들이 아닌, 귀족 계층 파트리키(Patricians)에 의해 선출됐다는 점이다. '귀족들이 뽑는 대표'인 셈이다.
특이한 점은 또 있다. 보통 선출이라는 개념은 미래의 가치를 본다. 무슨 말이냐면, '이 사람을 지도자로 세우면 무엇을 해낼 수 있을 것이냐'에 주목하는 게 합리적이라는 말이다. 내가 민주국가의 시민이라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로마 왕정 이 양반(?)들은 과거에 주목하는 방식이었다. 어느 가문 사람인지, 그 가문의 공적은 무엇이 있는지, 본인이 이룬 업적은 또 무엇이 있는지 등이다. 뭔가 과거 행적에 대한 '포상'으로 왕 자리를 주는 듯한 느낌이다. 하긴. 막강한 권한을 휘두를 수 있는 자리라면 포상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로마 왕정 - 원로원의 구조와 기능
로마 하면 거의 상징적인 느낌처럼 떠오르는 기구가 원로원이다. 딱히 고유명사 같은 건 아니고 무협이나 다른 장르에서도 흔히 등장하는 기구이긴 한데... 아마 내가 원로원이라는 개념을 처음 접한 게 로마 시대를 소재로 한 게임이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원로원은 '고위 귀족'들로 구성된 자문 기관이다. 원로라는 단어 때문에 뭔가 노인들이 모여있을 것 같은 이미지긴 하다. 하지만 저 시대 평균 수명이 그리 길지 않았을 거라는 점을 고려하면 지금 시대에 생각하는 원로와는 많이 다른 이미지였을 것이다.
아무튼 원로원은 정치적 결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기구다. 현대에 비유하자면 국회 느낌이려나? 흠... 좀 다를지도 모르겠다. 장관들로 구성된 국무위원에 가까울지도. 아무튼 원로원의 주요 기능은 왕에게 각 분야 정책에 대한 조언을 제공하는 것, 그리고 국가의 재정 문제를 다루는 것이었다.
다만, 얼핏 생각하는 것처럼 권한이 강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왕의 절대 권력 아래에서 원로원의 권한은 제한적이었으며, 왕과 원로원 간의 긴장 관계는 정치적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는 서술이 나온다.
대강 보니 서로 의견이 다를 때, 왕은 권력으로 밀어붙이고, 원로원은 나름의 권한으로 저항하면서 대립했던 듯하다. 뭐, 지금 시대랑 별반 다를 건 없어 보인다. 이쯤 쓰다가 생각해보니 왜 고대 국가들이 더 권력 분산이 잘 돼 있는 것 같지... 착각인가.
로마 왕정 - 귀족과 정치적 갈등
판타지의 왕국들이 흔히 그렇듯, 로마 왕정에서도 귀족들이 중요한 포지션이었나보다. 일단 왕을 선출하는 모집단이었다는 것도 있지만, 결국은 가문의 영향력을 토대로 정치력을 발휘하는 집단이었다고 보는 편이 합당할 것이다.
영향력을 가진 인간들이 모이면 필히 권력 다툼이 따른다. 동서고금 예외가 없다. 귀족들은 왕에게 충성하면서도 자신의 이익을 추구했다. 사실 좀 어폐이긴 하다. 절대적 충성과 이익 추구가 명확하게 공존할 수 있는 개념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적당한 수준에서는 이익을 양보하며 충성하는 태도를 취하고, 자신 혹은 가문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이익은 슬그머니 취하는 이중적인 모습에 가까웠을 것이다.
이러한 왕정의 복잡한 정치 구조는 어렵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흥미진진한 이야깃거리를 만든다. 로마 왕정은 왕과 귀족 집단 사이의 정치적 갈등을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붕괴를 맞았다고 하지만, 이야기를 쓰는 입장에서 보면 몹시 흥미로운 요소가 많아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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