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종족'에 관한 이야기를 한 차례 적어보았지만, 뭔가 뒷끝이 찜찜한 기분이었다. 분명히 그 세 가지 말고도 다른 접근법이 있을 것 같은데... 라는 생각. 답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요즘 오랜만에 다시 하고 있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이하 WoW)만 해도 다양한 아이디어를 줄 수 있는 종족 구조를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알다시피 WoW에는 초창기와 달리 상당히 많은 종족들이 등장한다. 진부한 것들도 있지만 나름 WoW 세계관만의 독창적인 종족들도 존재한다. 물론 그 '독창성'이라는 것에 대한 평가 또는 의견은 사람마다 다를 테니, 굳이 어떤 종족이 독창적인지는 이야기하지 않겠다.
다만 WoW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명확하다. 여기 등장하는 종족들은 '인간'과 비교했을 때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를 생각해보았다. 늘 그렇듯 딱 세 가지 아이디어만 짚어내고자 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쉽게 나오더라.
'새로운 종족' 창조하기 - 사회 구조와 문화
WoW가 해낸 가장 '업적'이라고 한다면, 오크(Orc)라는 종족의 이미지를 가장 크게 바꿔놨다는 것이다. 내가 경험해온 판타지 세상에서 오크는 항상 몬스터에 불과한 원시 종족이었다. 초등학교 시절이었나... PC방에서 <리니지>를 하며 수도없이 때려잡았던 오크는 글자 그대로 그냥 '괴물'에 불과했었다.
하지만 WoW에서의 오크는 어떤가. 부족 사회를 기반으로 하고 있고, 힘을 숭상하는 종족이라는 기초 이미지는 그대로다. 하지만 전통과 의식을 중시하는 강력한 전사와 주술사 중심의 문화를 갖고 있고, 이를 바탕으로 호드(Horde)라는 거대한 세력의 주축이 됐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영웅 역시 오크족 출신이기도 하고.
드레나이(Draenei)라는 종족도 꽤 깊은 인상을 남긴 종족이다. 이들은 '영적 지도자'를 중심으로 공동체를 형성한다. 빛의 종족이라 불리는 '나루(Naru)'의 가르침을 받아 협력과 조화를 우선시하는 종족이기도 하다. (물론 플레이어가 선택하면 전투와 파괴의 종족(?)으로 변하지만)
종교적인 의식을 중요시한다는 점은 사실 그리 참신하지는 않다. 인간 중에서도 종교적 가치를 중시하는 집단은 있으니까. 다만 드레나이의 경우, '종족 전체의 가치관'이 인간과 다르다는 느낌이다. 일부 개체의 가치관이 다른 것과, 종족 공통의 가치관이 다른 것은 분명한 차이라 할 수 있겠다.
위에 예를 든 두 종족은 지극히 일부일 뿐이다. 포인트는, 이런 식의 사회 구조와 문화 차이를 기반으로 차별성 있는 새로운 종족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앞선 글에서 다뤘던 거주 환경과 신체적 특징, 특별한 능력이 '자연적 조건'이라면, 이 내용은 '사회적 조건'인 셈이다. 어... 이렇게 쓰고 보니 제법 체계적으로 쓴 것처럼 보인다. (아싸, 개이득?)
'새로운 종족' 창조하기 - 역사와 신화
역사와 신화. 둘 중 어떤 것을 우선으로 놓아야 하는지 잠시 고민을 했었다. 결론은? "에이, 아무렴 뭐 어때......"
종족의 차이는 때때로 무엇을 믿는지, 어떤 역사를 가져왔는지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같은 인류 중에서도 어떤 종교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적이 되기도 하는 걸 보면, 믿음의 차이라는 게 얼마나 강력한 울타리가 되는지 실감할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신화에 대해 알아보고 싶어서 관련 책을 사놓기도 했다. (아직 읽어보지는 못했다)
WoW 이야기를 했었으니, 이번에도 WoW에 등장하는 종족들을 예로 들어보겠다. 오크 못지 않게 좋아하는 종족으로 '트롤(Troll)'을 꼽는다. 트롤 캐릭터 자체는 딱히 취향은 아니지만, 그들의 배경 스토리와 신화, 역사는 매우 좋아하는 요소다. 일반적으로 '몬스터'로 다뤄지다가 문명 종족으로 새롭게 브랜딩(?)됐다는 점에서는 오크와 비슷하다.
WoW의 트롤은 '부두교' 문화를 모티브로 가지고 있다. 종족의 사회에서 부두술사가 지위를 차지하고 있기도 하고, 부두교 가면을 쓰고 다니는 사례도 흔하다. 신의 존재와 영혼을 숭배하는 사상, 실제 부두교 신앙과 유사한 점을 곳곳에서 드러내는 모습들이 보인다. 부두교에 대해 속속들이 잘 아는 건 아니니 대략 이 정도까지만 언급해두겠다.
중요한 포인트는, '신화'라는 요소 하나만 가지고도 상당히 개성 있는 종족이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트롤이라는 종족의 사회 구조만 놓고 보면 오크와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들이 사는 마을의 모습이라든가, 부족 내 직책이나 사회구조는 '신앙'과 이어졌을 때 진정 독특한 개성을 발휘한다.
역사도 마찬가지다. 본래 신화는 역사와 별개의 개념으로 봐야 옳다. 일반적으로 신화는 어느 정도 상상의 요소가 가미돼 있지만, 역사는 엄밀한 사실을 토대로 하는 것이 기본이니까. 하지만 가상으로 만들어진 판타지 세계에서는 신화와 역사가 하나로 섞여도 좋을 것이다. 어차피 세계 자체가 상상인데 굳이 현실과 구분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니까.
'새로운 종족' 창조하기 - 종족의 탄생 목표
WoW 이야기로 소제목 두 개를 채웠으니, 마지막 하나는 다른 게임 이야기로 마무리 해보려 한다. 그래봤자 결국 블리자드의 또다른 작품이지만. 바로 <스타크래프트>의 '프로토스(Protoss)'와 '저그(Zerg)'다.
프로토스는 강력한 정신력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고도의 문명 종족이다. 고향 행성인 아이어(Auir)를 비롯해 종족 차원의 문화, 가치관, 신념을 지키는 것을 최우선으로 한다. 물론 <스타크래프트 2>의 캠페인을 진행하다 보면, 프로토스라는 종족 내에서도 계파 분열이 이루어져 다른 목표를 추구하는 이들이 있긴 하지만.
한편, 저그의 경우는 '환경 적응'과 '지배력 확산'을 목표로 한다. 원시 생명체를 흡수하고 그 유전자를 바탕으로 진화를 거듭하며 새로운 개체를 탄생시킨다. 이들의 목표는 분명하다. 모든 종류의 환경에 어떤 식으로든 적응하고, 이를 바탕으로 우주의 모든 행성을 지배하는 것.
그 복잡한 세계관을 일일이 다 설명하기에는 한도끝도 없으니, 늘 그렇듯 '포인트'만 짚어보겠다. '종족 차원의 목표'라는 것 또한 새로운 종족을 정의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서는 '창조주'라는 개념이 필요할 것 같긴 하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탄생시켜야' 가능한 개념이 아닐까 싶어서다. 아니면 오랜 기간 진화를 거듭해오며, '유전자'에 새겨진 종족적 목표를 설정하는 방법도 있긴 하겠다.
개인적으로 창조론보다는 진화론 쪽으로 세계관을 짜 보고 싶긴 하지만... 너무 오랫동안 창조론을 베이스에 두고 있는 작품들을 소비해와서 그런지, 사고방식이 잘 바뀌지 않는다. 음... 그러고 보니 '창조된 종족'과 '스스로 진화한 종족'이 함께 등장하는 세계관도 매력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마지막 스스로 던져보는 엉뚱한 질문 하나. 저그는 과연 '창조론적 종족'이라고 봐야할까, '진화론적 종족'이라고 봐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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