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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k Room _ 창작 작업

[생각] 판타지 세계의 '인간'과 '사람'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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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인간'과 '사람'이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딱히 이상할 것이 없는 일상적 단어들이다. 엄밀히 따지면 다른 단어지만, 보통은 비슷한 의미로 쓰인다.

하지만 '판타지 소설'의 영역에서 보면 두 단어는 엄밀한 차이를 보인다. 특히 판타지 소설에서는 캐릭터의 정체성과 다양성 등이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된다.

소설의 주요 장치로 사용되는 '갈등'은 인물 사이에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차이에서 비롯된다. 생각의 차이, 가치관의 차이가 주로 사용되지만, 그것들의 뿌리는 정체성의 차이, 태생의 차이, 문화의 차이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판타지 소설에서는 또 하나의 '차이'가 들어간다. 인간의 상상력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가상의 종족'들이다. 흔히 '아인종' 또는 '이종족(Another Species)'이라고도 불리는 엘프, 드워프 같은 종족들이다.

인간과 사람의 차이에 대한 고찰. 어쩌면 철학적이 될지도 모를 이 주제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인간'과 '사람'의 차이

일반적으로 '인간'은 인류 전체, '사람'은 개인을 지칭하는 느낌이 있다. 이 사람, 저 사람 하는 식으로 특정 개인을 가리킬 때 '사람'을 주로 쓰고, '인간은 꾸준히 발전해왔다'라는 식으로 포괄적인 표현에 '인간'을 쓴다. ("이 인간이 미쳤나" 같은 건 예외로 하자;;)

현실에 인간 외의 지성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흠... 시간이 지나면 AI가 인간처럼 지성을갖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날이 오기 전에 난 세상에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니 패스.

그렇기 때문에 인간과 사람은 사실상 의미 차이가 크지 않다고 본다. 사람이 좀 더 가깝고 구체적인 느낌이라면, 인간은 좀 더 멀고 추상적인 느낌이 있을 뿐. 가리키는 대상 자체는 같다는 이야기다. 맥락에 따라 달라지지만 두 단어를 혼용해도 큰 문제가 없는 경우도 많고.

그렇기 때문에 '판타지 세계에서의 사람과 인간'을 떠올렸을 때는 여러 모로 생각이 복잡했다. 주제를 정한 순간 딱 떠올라버린 아이디어 몇 개, 그리고 도무지 어떻게 풀어야 할지 답이 나오지 않는 아이디어 몇 개.

이 글은 그 모든 것들을 잡탕처럼 한데 넣고 휘휘 저어놓은 결과물이다.

판타지 세계에서의 '인간'

판타지 소설에서 '인간'은 의미가 달라진다. 우리가 스스로를 칭하는 '인류'라는 표현과 대응되는 '종족으로서의 인간'을 의미한다.

우리네 현실에서는 "이 인간이 미쳤나"라는 식으로 과격하게 말할 때나 쓴다. 하지만 판타지에서라면? 어떤 드워프 캐릭터가, "이 인간 친구가 그렇게 말했다니까?"라는 식의 표현이 자연스럽다. 내포하고 있는 의미의 범위가 달라진다? 라고 말해야 할까.

판타지에서의 인간은 실제의 우리와 유사한 특성과 문화를 가진다. 육체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비슷한 부분이 많다. 독자 입장에서는 비교적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조건인 셈이다. 보통 주인공 캐릭터가 인간 종족으로 설정되는 경우가 많은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지난번 썼던 '이야기의 디테일' 시리즈 중 마지막 세 번째였던 심리 묘사의 이야기를 끄집어내볼까 한다. 인물의 내적 갈등에 관한 이야기다.

보통 내적 갈등이라는 건 인물의 성격과 가치관에 뿌리를 둔다. 그리고 성격과 가치관은 타고난 성정부터 살아온 경험까지 폭넓은 요인의 영향을 받는다. 그렇다 보니 내적 갈등을 효과적으로 묘사하기에는 '인간 종족'이 수월할 수밖에 없다.

예외는 있다. 다른 종족이라 해도 어려서부터 인간 사회에 섞여 성장한 경우다. 이런 캐릭터는 겉으로 타 종족이지만 속은 인간이라 봐도 무방할 것이다. 본래 종족의 문화보다 인간의 문화가 더 익숙할 테니까.

이 글에서는 '문화'라는 개념까지 가지는 않기로 한다. 그러기엔 너무도 방대하고 복잡해지니까.

판타지 세계에서의 '사람'

반면, 판타지 세계에서의 '사람'은 인간보다 훨씬 넓은 영역을 포괄한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종족에 무관하게 '지적인 사고와 의사소통이 가능한 모든 존재'를 가리키는 말이랄까.

판타지에는 다양한 이종족이 등장한다. 단골처럼 나오는 엘프나 드워프는 물론 오크, 고블린, 트롤 때로는 마족까지 등장한다. 작품마다 차별성을 주기 위해 독특한 종족을 창조해 등장시키도 한다. (이 분야에 조금이나마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들 떠오르는 세계관이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이들은 '종족'이라는 개념 아래 자신들이 공유하는 특성이나 가치관, 문화 등을 가지고 있다. 덕분에 판타지는 더없이 복잡해지기 쉽고, 그만큼 풍부한 다양성을 자랑하는 세계가 되기 쉽다.

우리는 종종 "너도 사람이라면"이라는 표현을 쓴다. 사람으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어떤 태도나 생각 등을 언급할 때 쓰는 말이다. 이 말은 적어도 판타지 세계에서는 먹히지 않는다. 애당초 '같은 사람'이 아닌 존재들이 너무 많으니까. 아, "너도 인간이라면"은 오히려 잘 들어맞겠다.

'다른 종족'이라는 개념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다름(difference)'의 폭을 훨씬 넓혀준다. 특정한 개인을 지칭하는 본래의 의미도 물론 남아있다. 여기에 더욱 다양한 배경, 다양한 성격, 다양한 변수를 가진 개인들이 늘어난 셈이다.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해야 하는 창작자로서는 흥이 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우리 '인간'이라는 종족은 무슨 짓을 해도 100% 이해하는 게 불가능하다. 현실의 인간을 그대로 반영하는 한.

하지만 다른 종족은 다르다. 그들은 내가 창조한 것들이기에, 나는 그들을 이해할 수 있다. 아니, 이해할 수밖에 없다. '오직 나만의 세상(머리)'에서 태어난 존재들이니까.


판타지 세계에는 현실보다 훨씬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상기 이미지 출처 : 프리픽(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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